4기 선발자 세전메 <인생학교 졸업연사>
윤** 2023-09-23 17:37 271
<세전메: 인생학교 졸업연사>
내가 세젠메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엔코이의 생각에서 가장 공감이 되었던 <인생학교> 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나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삶이라는 시간동안 우리는 학교를 다닐 뿐이며 그 시간속에서 자유롭게 경험하고 변화하고 실패해도 된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이를 가상체험으로 보여주기 위해 곧 죽음을 앞둔 내가 인생학교를 졸업하며 축사를 발표하는 것처럼 세젠메를 구성해보았다.
어떤 문제에서 도망쳤다고 생각했을 때 비슷한 문제를 만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때가 있다. 나는 삶이 길다란 직선의 길이라고 생각해서 눈 앞의 문제를 외면하면 문제를 벗어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을 때에도 그 때 겪던 문제가 몇번이고 다시 나타나는 경험을 했다. 엔코이에서는 인생을 학교라고 말한다. 나는 그런 맥락에서 인생이 나선형이며 이것이 학교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학교 교육과정도 이러한 나선형의 과정으로 설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학이라는 영역에 대해 초등학교 저학년에는 원의 형태에 대해 배운다면 같은 내용을 초등학교 고학년에 가서는 원의 넓이에 대해 배워 원에 대한 지식을 확장하도록 한다. 고학년이 되어 저학년의 원 문제를 보면 정말 쉬웠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처럼 인생도 같은 문제가 다시 닥쳤을 때 성숙한 시선으로 문제를 다시 보게 되면 내가 비겁했으며 무지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생은 누군가 설계한 것처럼 이렇게 설계되어 있다. 엔코이에서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와 같은 의식수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계속 문제가 반복된다면 피하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현재 수준에서 나의 의식수준을 높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 어깨에 있던 무거운 짐들이 하나씩 덜어진다. 태어나는 순간 인생학교를 입학해 배우고 실패하고 깨닫고 있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렇게 헤쳐나가며 내가 배운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 나에게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있다. 그것은 나의 부족함일 수도 있지만 내가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엔코이에서 다루었던 엄마와 딸의 관계, 인간관계에서의 갈등, 연인과의 사랑 등이 신기하게도 내가 인식하고 있는 문제들이었다. 엔코이의 시각에서 제시한 해결방법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따로 출력을 해둔 만큼 자주 읽으며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그저 장학금을 받기위한 수단으로 읽기 시작했던 엔코이의 게시글에 몰입하고 공감하며 며칠에 걸쳐 보게 되니 엔코이를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이 만남을 나의 내적 성장에 큰 변환점으로 만들고 싶다.
<재단에 전하고픈 말씀>
이십대 후반의 나이에 다시 대학생활을 시작한 지 2년이 되어 갑니다. 오기 전에 많은 걱정이 있었지만 20대 초반의 학생들과 똑같이 학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는 자식을 다 키우고 늦게 대학에 오신 분도 있고 오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오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분들도 나도 결코 늦지 않은 것이구나 느끼게 됩니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없이 다시 시작하는 것이 바보 같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나무를 통해 믿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이 힘들 때 동네를 걸으며 나무를 많이 보았는데, 제자리에서 아무것도 안하는 것 같던 나무가 계절이 바뀔 때 쯤 이면 날씨보다 먼저 조용히 변화를 준비하는 것을 보면서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던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계속 뻣어나가는 가지를 보며 지금의 도전은 그저 수천개의 가지 중 하나의 가지를 뻣어내는 과정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무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가지가 자라날 때 다른 쪽의 가지도 자라나게 한다고 합니다. 이는 가지가 하나 생길수록 점점 더 많은 가지가 생겨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가지가 많아질수록 잎도 많아지면 똑같은 햇빛을 받아도 더 풍부한 광합성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같은 지식, 현상에 대해 배워도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다양한 시각에서 생각할 수 있는 인간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또한 풍부한 잎은 잠시 쉬러온 누군가에게는 시원한 그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지 뻣기를 계속 해나가려 합니다. 이 마인드로 저는 브레인스토밍을 해왔고, 아이디어가 생기면 거침없이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퇴사 후 작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지원 과정을 1년 동안 밟으며 창업가의 마음으로 살았던 경험은 함께 하는 일에도 오너십을 가지고 임하는 저를 만들어주었으며 남들의 조언을 진심으로 받아드릴 줄 아는 겸손한 사람으로 저를 단련시켜 주었습니다. 비록 창업이라는 길을 걷기엔 어렵다는 판단으로 그만두었고 처음엔 그 사실이 창피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저의 도전 용기와 경험을 높이 평가해주신 어머니가 계셨고, 이것은 저에게 본보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저도 그런 자세를 본받아 남은 시간들을 살아가고, 남들이 자신의 가지를 뻗으려 할 때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엔코이 재단을 만나 엔코이의 글을 정리하고 읽어보며 제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저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인생을 그저 제가 되는 과정이라고 여기니 삶이 가벼우면서도 즐겁습니다. 장학금을 못 받게 될지라도 저는 여러 개의 질문에 답을 준비하면서 한결 단단해진 것 같습니다. 엔코이의 글들을 앞으로도 인생에 어려움이 있을 때 읽으며 저를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역시 사람들의 의식성장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신청서 발췌글>
우리는 어떤 기준에 따라 사람들을 평가하는데 익숙하다. 그 기준은 취향이라고 불리기도 선입견이라 불리기도 한다. 나는 언제부터 그런 기준으로 사람을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중학교 때의 일이었다. 어떤 무리에 있던 중요하지 않던 과거와 다르게 사춘기에는 누구와 친구인가가 예민한 문제였다.
그런 기준으로 사람을 바라보니 누군가를 만나고 오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생각해보면 에고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에고는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이 좋아하는 사람만을 인정했다. 또한 에고는 스스로의 평가 또한 외부의 기준에 맞춰 하게 했다. 그 사람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나를 그런 존재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내 존재를 비교 우위로 판단했다. 우위를 점하기 위해 외모, 입는 옷, 표정, 유머, 센스, 배려 등을 갖추려 노력했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진정한 나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필요에 따라 내가 장착하는 아이템 같았다. 그로 인해 관계가 의무적이고 가식적으로 느껴지게 되고 신나는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렵다.
나는 이것이 현대사회에서 늘어나고 있는 우울증, 대인기피증과 같은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멈추지 않는 이상 남에 대한 평가도 멈출 수 없다. 그렇게 가치판단 밖에 있는 진짜 나와는 멀어져 가며 마음의 병이 생겨나는 것이다. 나는 어린시절 놀이터에서 몇 시간이고 함께 뛰어 놀던 그 시절의 인간관계를 동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가 놀이가 되어주고 나눌 것이 웃음뿐이어도 충분하던 그때가 그립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어린이와 같은 우정을 바라는 것은 철 없는 소리같다. 그래도 어린이와 같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그런 선입견 없는 시선을 주었고 또 받아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나 자신의 회복으로 시작할 수 있다. 나 자신을 회복하기 위해 판단하려 하는 에고를 경계해야 한다. SNS에서 보기좋은 모습만을 포스팅 하려는 에고의 명령을 멈추고, '나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존재 자체에 주의를 기울였음 한다. 나 자신을 인정할 때 다른 사람도 인정해 줄 수 있다. 외모나 재산, 집안, 능력, 성격 등은 인간에게 부가적인 요소일 뿐이다. 우리가 만남이라는 순간에 인식해야 하는 것은 상대적인 그 사람의 가치나 위치가 아니라 세상에 하나 뿐인 존재를 만나는 것에 대한 환대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더 행복해질 것이다.
진정 나 다운 것은 나만의 꿈을 꿀 때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보고 존경하는 최진석 철학자의 <왜 배우는 가> 라는 강연이 떠올랐다. 오랜 시간 교육을 받으며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질문은 나는 왜 배워야 하는가 였다. 내 머릿속의 물음표는 갈고리와 같다. 갈고리 없는 낚시질은 아무소용이 없는 것 어릴 적 교육을 통해 내가 건진 배움은 적었다. 강연에서 그는 한국을 지식 수입국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지식의 생산자는 누구인가? 나는 그 답을 대학교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거의 많은 학문의 전공교재를 보면 외국의 교재를 번역해서 만들어졌다. 또 학문이 외국에서 시작된 초기연구를 바탕으로 현재까지 왔음을 알 수 있다. 지식의 생산자는 지식을 습득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지식을 만들었다. 나는 이러한 관점에서 학문을 바라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지식을 습득하고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웠지, 지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배우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식 생산자와 같은 높은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개인, 국가가 꿈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꿈은 계획할 수 있고 실현가능성이 높은 것이 아니라, 독창적이고 엔코이에서 강조하는 에고를 불안하게 하는 꿈이다. 그런 꿈의 존재를 긍정하는 메시지를 접하고 나도 그런 꿈을 꾸고자 한다. 그러다 보면 꿈은 점점 확장되어 간다. 어린시절 생활기록부에 들어가는 장래희망 칸으로는 꿈을 적기 턱없이 부족하다. 20대 후반이 되어서 찾은 나의 꿈은 장애와 비장애를 아우르는 교육 전문가이자 학생들을 위한 교육 정책을 수립하는 교육 정책가이다.
하지만 조금 시선을 돌려 현재 아이들을 바라보면 아이들 대부분은 유튜버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이를 과거 의사, 변호사와 같은 직업보다 훨씬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꿈이라고 칭찬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도파민을 자극하는 콘텐츠를 만들며 유튜브 생태계에서 돈을 잘 벌고 인기를 얻으면 인생이 행복해진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학창시절 가장 좋아하던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책에 빠져 방학동안 도서관에 가서 그가 쓴 다양한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그때의 영향으로 나는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위험한 것이 되기도 하고 이로운 것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인터넷 사용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해롭다는 인식으로 컴퓨터 시간을 제한했다. 하지만 인터넷 사전, 이러닝, 검색포털 등의 발달로 이젠 학습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구가 바로 인터넷이다. 현재 유튜브는 어떨까. 자극적인 콘텐츠가 많기는 하지만 전문가의 생각을 듣거나 모든 분야의 지식을 다양한 언어로 습득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유튜브를 많이 소비한다고 해서 아이들을 탓 할 수 없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 하다. 현재 수업에서 유튜브를 많이 활용하고 있듯 학생들에게 올바르고 유익하게 유튜브를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고, 학교에서의 교육과 유튜브에서 보여주는 현실이 큰 괴리를 만들지 않도록 해 아이들이 학교교육을 진부한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학교에서 스스로 배움의 주체라는 정체성을 부여받고 배움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모두 다르듯 각자 다른 꿈을 꿀 수 있는 포용력 있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교육이 변화 할 때 늦게나마 어른들도 자기만의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이 나답기 위한 시작점임을 알고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