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 선발자 세전메: 경쟁 사회 속 진정한 나를 찾기
서** 2023-09-21 22:27 228
<우리의 에고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엔코이 재단의 선발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게 된 신청자입니다. 엔코이의 말들을 하나하나 읽어본 후 희망 장학생 서류를 작성할 당시만 해도 엔코이가 말하는 의식성장에 대해 흐릿한 이해를 지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엔코이 재단으로부터 받은 사랑 덕분에, 제가 제작한 기존의 세전메 멘트와 신청서를 놓고 제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한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더 나은 이해를 가지고 다시 한 번 고민해보고, 엔코이의 말들을 읽으며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도 몰랐던 제 안의 에고가 너무 오랜 시간 강하게 뿌리내려져 왔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그간의 제 삶은 꽤나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으로 나뉘어져 왔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 그 간의 갭을 줄이기 위한 노력 말이죠. 세전메를 작성하는 당시에도 여전했습니다.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의 경쟁은 출발점부터 다르다고만 여겼고, 우리가 경쟁사회에 목을 매는 이유가 단지 부자들의 속임수라 생각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안의 에고는 사람을 선과 악으로 나누어, 부자를 나쁜 사람으로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 빈부격차에 관한 부정적인 에고는 과거의 인식 패턴으로부터 비롯되어져 왔습니다. 중학생 시절, 영재학급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는데 저를 제외한 모든 친구들이 같은 학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선행학습을 하진 않았지만 복습을 꾸준히 해왔던 저와 그 친구들의 실력 차이는 비교조차 불가했습니다. 그로부터 가정환경에 대한 불만, 출발점에 대한 무의식적 비교가 현재까지 이어져 왔던 것입니다. 가난은 세습된다, 부자는 상속된다는 강한 인식이 제 안에 있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저들을 이길 수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인정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들과의 경쟁에서 졌을 때도 에고 뒤에 숨어, 상황에 대한 불평불만과 경쟁의 불공정함을 따져왔습니다. 단순히 빈부격차로 옳고 그름을 나누며 부자들에 대한 이원론적인 색안경을 쓰고 있기도 했죠.
물론 에고의 구성물들이 저에게 무조건 부정적인 영향만을 끼쳤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일정 부분 더 나은 삶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여 원하던 대학의 학과에 진학하기도 했고, 전공수업을 들을 때에도 밤낮 가리지 않고 열정을 쏟을 수도 있었습니다. 더 높은 의식상태였다면 물론 더 수월했겠지만, 당시 제 의식수준에서라면 학업적인 측면에 결국 제가 가진 수많은 자아들(에고의 구성물들)의 도움을 일정 부분 받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단 한 번도 사교육을 받지 않고 지금의 내가 된 것’은 스스로에게 꽤나 자랑거리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조차 남들과의 비교 속 찾아낸 저의 가짜 정체감이었죠. 에고 뒤에 숨어 진정한 나를 찾지 못한 채 남들과의 비교 속 합리화를 통한 행복감을 찾아 어둠 속을 헤매이고 있어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그동안 제 안의 에고는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마치 진정한 자아인 냥 제 모든 생각과 감정을 사로잡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제 의식성장뿐 아니라 관계와 자존감, 만족, 삶의 질을 더 하락시키는 근본적인 요인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거나 경쟁에서 패배했을 땐 늘 거대한 상실감과 상황에 대한 탓을 하며 합리화를 해오던 에고와의 동일시는, 이제 더 이상 필요치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 그것(에고)과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잘할 수 있어!’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엔코이 재단을 통해 인지하지도 못한 채 지녀왔던 이 에고를 찾아낸 현재, 단연코 달라졌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남들과의 비교 속 스스로를 던져놓지 않습니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 안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더 나은 삶을 위한 방향성으로, 삶의 원동력을 얻고 있습니다. 더 이상 가난함으로 제 행동의 결과를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노력이라는 추상적인 개념 아래 있었던 지난날의 나를 이제 보내고, 새롭게 태어난 나로서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도록 더 나아가자 라는 마음가짐은 제 안의 열정을 지치지 않게 만들어주는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나만의 창의성을 끊임없이 길러나갈 것입니다.
지금껏 쭉 함께 해왔던 나의 에고를 이제 떠나보내며, 더 이상 남과의 비교를 통해 행복감을 찾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나를 대할 땐 여태껏 가진 모든 선입견과 판단, 경험들을 뒤로 제쳐두고 내면에 귀 기울여 대할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 이러한 깨달음을 주신 엔코이 재단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덕분에 스스로 지니고 있던 이원론적인 사고방식과 에고를 돌이켜보며 또 다른 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제겐 더 이상 알 수 없는 미래가 두렵지 않습니다. 살면서 또 다른 경험을 얻고, 새로운 의식 성장으로 다시 태어날 스스로가 기대 됩니다. 엔코이 재단의 역할처럼 저 또한 수많은 사람들의 의식 성장을 도우며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세전메 영상 내 멘트를 일부 수정합니다. 영상을 보실 때 참고하세요. :
수정 전: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해내는 부자들의 모습을 보며 돈이 많아야 행복하다, 좋은 집이 있어야 행복하다라는 내면에 만들어낸 가짜 행복감은 노동자들에게 일을 해야 하는 원인을 제공해줍니다. 실제 한국은 전 세계 명품 소비율 1위에 도달했습니다. 즉, 보여지는 것, 부자들이 입고 즐기는 것들을 선망하도록 에고가 점령당한 것입니다. 부자처럼 보이고 싶다는 단순한 열망은..."
수정 후==>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하려는 일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돈이 많아야 행복하다, 명품 아파트가 있어야 행복하다'라는 가짜 행복감을 받아들이곤 합니다. 실제 한국은 전 세계 명품 소비율 1위에 도달했습니다. 즉 보여지는 것, 이왕이면 명품 브랜드를 입고 즐기는 것들을 선망하도록 길들여진 것입니다. 명품이 꼭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부자처럼 보이고 싶다는 열망은...")
(*서ㅇㅇ양께서 이 세전메 영상을 유투브 '전체 공개' 게시하는 것에 동의해 주셨습니다. 자발적 기여와 나눔, 재단에 대한 헌신, 개방성에 깊이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제 세전메의 주제는 ‘경쟁사회 속 진정한 나를 찾는 법’입니다. 앤코이가 말합니다는 왜 스스로가 남과의 비교를 통해 좌절하는지, 갈등 상황에서 헤매고 있던 이유는 무엇인지, 삶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앤코이가 일깨워준 의식성장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영상을 찍게 되었으며, 경쟁 사회 속 청년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고 있기에 경쟁이라는 것의 본모습과 나를 찾는 법에 대해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우리 사회는 학창시절부터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가 그간 흔히 해왔던 경쟁은 단기간에 업무의 효율을 높여줄 수도, 상대를 본보기 삼아 더욱 발전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스스로의 창조성을 길러주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세대가 이전 세대와 달리 인공지능에 대응해 갖춰나가야 하는 것은 바로 풍부한 상상력과 공감능력입니다. 하지만 끊임없는 경쟁 속 지친 청년들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강점들을 잃은 채 삶에 안주해버리곤 합니다. 따라서 세전메를 통해 과거 답습되던 방식의 경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그 끝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주고 싶었습니다.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며 이기려 애쓰는 행위는 결국 내가 상대보다 못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는 것. 결국 경쟁을 지속한다는 건 나 자신을 깎아내리는 행위임을 스스로 깨닫길 바랍니다.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성적이라는 지표를 통해 일렬로 순위가 매겨져왔고 그렇기에 평생 이 경쟁이라는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도 앤코이 재단을 만나기 전까진 경쟁이 제 삶의 원동력이라 여겨왔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따라잡기 위한, 이기기 위한 부정적인 감정은 단기적으로 꽤나 큰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지만 스스로를 평생 피해의식에 옭아매게 만듭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남들보다 뛰어난 자신만의 능력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하지만 평가에 사로잡혀 인생의 목표를 저 사람을 단지 '이기겠다'라고 설정하게 된다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를 잃게 되며, 마치 도플갱어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이 세전메를 통해 청년들에게 던져주고 싶은 메시지는 경쟁 사회에 속지 말라는 점입니다. 누군가와의 경쟁을 시작하게 된다면 그와의 출발점부터 과정 하나하나 비교하게 될 것입니다. 그 후 그를 이기지 못했을 때 남는 감정은 주로 자기혐오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강점을 지닌 채 태어납니다. 그러니 무의미한 경쟁을 멈추길 바랍니다. 경쟁의 대상에서 주의와 에너지를 진정한 나 자신, 나의 내면으로 돌려 그 강점을 키워나갔으면 합니다. 성장은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성장으로 내가 세운 목표, 이루고자 하는 다짐과도 견주어 자신을 '더 이상의 나'로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과거의 나와 달리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기도 합니다. 이것이 앤코이가 저에게 전해준 내면의 의식성장에 다가가는 방법입니다. 무엇을 할 때 내가 가장 행복한지, 삶 속에서 무엇을 일구어내고 싶은지 그 목표를 찾아나간다면 언젠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과거 경쟁이 익숙했던 저는 '앞으로 소외계층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프로그래머로서 정보화 시대 속 도움을 주고 싶다'는 뚜렷한 목표를 지녔던 바 있습니다. 이 목표는 제가 지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던, 앤코이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저를 이끌어준 원동력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 내면에 많은 변화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앤코이는 삶의 목적이 의식을 점점 높여 근원을 향해 성장시키는 것이라 말합니다. 보이는 것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보다 많아져 사회의 집단의식이 향상되고, 그렇게 제가 꿈꾸는, 진정한 풍요 속에 갈등을 건설적으로 풀어나가는 사회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에 위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저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앤코이의 글을 읽고 집단 의식을 향상시켜, 계속해서 갈등의 쳇바퀴만을 돌게 되는 이원성의 패턴을 부디 빠져나오길 바라는 바입니다.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갈등에 속지 않고, 자신의 자아감을 확장하는 사람으로서 성장하길 바랍니다.
이원성을 넘어 균형과 분별력을 가진 사람은 사회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정적인 상황에서 쉽게 잠식되는 우리들에게 재단은 생각의 전환점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저 또한 이전까지는 수많은 갈등 상황 속 소극적인 태도를 고수했지만 이젠 적극적인 주체가 되어 격양된 이들에게 갈등 너머를 바라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젊은 청년들과 더불어 기성세대들은 이제 단지 본인들의 경험과 삶의 과정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도록 자유의 본질을 깨우칠 필요가 있습니다. 앤코이는 우리에게 각자 서로 내면의 잠재력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모두'를 높일 때 더 커다란 것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저도 위에 밝혔듯이, 과거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 성공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그 이후 대기업에 입사해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제 목표였으니 말입니다. 기성세대는 대입에 인생의 전부를 걸라고 말합니다. 대입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그 인생이 마치 성공한 인생인 것처럼 말이죠. 그 결과 우리나라에선 유독 치열한 입시문화 제도가 보여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대학에 진학해 높은 연봉을 받는 직장인이 되는 것이 나의 행복을 위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어른들이 취한 강압적인 수단은 행복을 찾는 길과는 반대의 길을 알려주고 있었고, 명문대를 졸업한 아이들이 자신의 앞길에 대해 주저하는 것은 당연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앤코이의 첫 글에서 그 정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부여받은 천부권리인 창조적 상상력. 한 개인의 가치는 결코 외적 재산이나 태어난 환경을 포함하여 가시적인 것으로 규정되지 않습니다.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을 알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본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의식수준을 점차 높여간다면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있습니다.
앤코이의 질문 덕에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꿈이 떠올랐습니다. 어떠한 사회적 편견과 경험에 접해있지 않았을 때, 순수한 호기심으로 키워갔던 꿈은 바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기초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에 기초과학을 고수하는 것은 제 큰 욕심이었습니다. 이 학문으로 노벨상을 타기까지는 금전적인 보상을 기대할 순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제 흥미를 이끌었고, 취업률이 높았던 프로그래머로 꿈을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현재에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멀티미디어 공학과에 다니며 간단한 웹사이트 프로그래밍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앤코이의 질문을 읽고 내가 원하는 진정한 내 모습을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꿈부터 현재의 꿈까지.. 가진 편견과 처한 환경을 모두 내다버린 채 내면을 들여다본 결과 제가 원했던 것은 이 사회에 어떤 방면으로든 기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초과학에 관심을 가졌던 계기는 우리나라에서 기초과학이 당장의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배척당한 학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이후였습니다. 하지만 기초과학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준 장본인이며, 모든 과학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학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 기초과학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 성공해 노벨상으로서 보상받고 싶었던 것이죠.
하지만 현재의 프로그래머라는 꿈도 큰 본질적인 방면에선 다르지 않았습니다. 프로그래머로써 하고 싶었던 일은 점차 고도화되는 정보화 사회 속 뒤처지는 이들이 없도록 손쉽게 도움을 주는 웹사이트들을 개발하고 AI를 적용시켜 개인의 상황에 맞춤형으로 안내해주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꿈을 가지게 된 계기는 독거노인 중 대다수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을 몰라 신청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입니다. 제가 진정으로 관심을 두고 이루고 싶은 사업은 사회에서 뒤쳐져 있는 분야와 사람들을 함께 이끌고 나가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살기 좋은 우리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분야의 글들을 읽고 수집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할 때 가슴이 뛰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엔 행동이 먼저 나간다고 합니다. 평소엔 소극적이던 제가 복지 웹사이트 개발이라는 목표를 지닌 뒤부턴 수업시간에 누구보다 눈에 띄는 학생으로 변해갔습니다. 또 빠르게 성장해 목표를 이뤄내고 간접적으로 배제되어 있던 이들에게 도움을 줄 생각을 하면 두근거림이 모든 행동의 원동력이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나 자신과 행복 아닐까요? 제 꿈은 어른들이 말하던 사회적 성공의 편견처럼 높은 자리를, 많은 돈을 버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바라고 하는 일도 아니고요. 하지만 제 안에 존재하는 자아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고 끝없는 동기부여를 통해 삶의 활력을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 앤코이 덕분에 제 내면의 가치가 무엇인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삶 동안 살아있으며 어떤 일을 남기고 싶은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나눔과 배려 속 그 존재의 가치를 인식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제 삶을 온전히 투자하고 싶습니다.
앤코이를 접하기 전까지 가난이라는 트라우마는 제 인생의 발목을 잡는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트라우마가 되었던 한 순간의 계기는 없었습니다. 사회에선 가난을 한심하게 바라보았고, 누군가는 불쌍하다며 연민의 감정을 보여주었기에 어느 순간부터 저에게 가난은 비밀처럼 꼭 숨기고 싶은, 탈출하고 싶은 트라우마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트라우마는 오랜 기간 동안 무언가를 시작하기 앞서 비용이라는 측면을 가장 우선시하여 고려하게 만들었고,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학창시절 단 한 번도 사교육을 접하지 않고 교과과정만을 학습하여 종종 경쟁에서 뒤쳐지는 일도 발생했었습니다. 또한 진로(전공)를 정해야 하는 고교 3년간 교과과정 외 더욱 심화된 교육을 통한 학업의 흥미를 홀로 찾기엔 어려움을 겪어왔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읽고 싶은 전공서적 하나조차 사기에 부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앤코이는 이 트라우마를 삶의 걸림돌이 아닌 불가피한 부분으로서 인정하고 잠재되어 있는 변혁의 힘으로 사용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이후 곰곰이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진 결과, 가난이라는 트라우마가 저에게 나쁜 영향만을 끼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정진해나가는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무의식 속 계기가 바로 가난이었습니다. 당시 가난은 저의 삶에 끈기와 원동력을 제공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먹고 자는 것에 어려움을 겪어본 자들은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간절한 일인지 모두 공감할 것입니다. 주변 친구들은 항상 저에게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사느냐고 묻습니다. 당시엔 인지하지 못했지만 현재에 와 바라보았을 때 그 계기는 가난입니다. 가난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위인들의 트라우마나 장애, 가정사정 등의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했다는 점을 알고 계신가요? 또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해소해주고 돕고 싶다는 내적 동기는 제 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회 구성원 중 어느 누구라도 소외되는 계층이 없도록 프로그래머로서 기여하겠다는 꿈 말입니다.
제 트라우마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끈기를 불어다 주었고, 소외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고, 우리 사회가 균형 있게 발전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지 일러주었습니다. 더 이상 제게 트라우마는 약점이 아닙니다. 약점을 강점으로 뒤바꿔 삶의 가치를 찾아준 원동력일 뿐입니다. 앞으로도 이 원동력을 발판 삼아 멈추지 않고 나아갈 것입니다.
트라우마의 혁신적 변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지난 날들이 좀 더 통합되고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약점이나 트라우마가 아니었습니다. 이를 깨닫게 되자 앞으로의 꿈을 향한 더 많을 고난과 역경들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기대가 됩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을 이유를 깨닫게 해주신 앤코이 재단에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목표만 있지 내면에 대해선 제대로 들여다 본 적이 없었습니다. 스스로가 왜 이러한 목표를 추구하는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와 같은 물음들 말이죠. 하지만 앤코이의 질문들을 읽고 오랜 시간동안 고민해보며 얻은 결과는 모든 행동에 그에 마땅한 이유들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현재는 교육봉사를 하며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행복감도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재단에서 내면의 의식성장을 깨우쳐주신 만큼 더욱 더 스스로의 내면을 발전시키고 사회에 도로 기여할 수 있는 구성원으로 성장하겠습니다. 또한 저와 같은 교육의 이면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꾸준히 봉사하며 이들이 주변과의 비교가 아닌 스스로의 내면과의 갈등에서 이겨낼 수 있도록 앤코이와 같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제가 꿈꾸는 미래사회는 그 어떤 편견도, 갈등도, 사회적 약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의 집단의식을 고양시킬 것이며 약자들에겐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싶습니다. 제 삶의 목적성을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갈등의 원인을 넘어서는 진정한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자아감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에게 제 경험담과 깨달음을 전해져 사회의 집단의식을 향상시킬 수 있을 때까지 정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