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코이에게 전합니다

4기 선발자: 앤코이와 함께 하는 동안 정신적 해방을 경험했습니다. <세전메: 내가 봐줄 때 가장 빛이 나는 것>

한** 2023-09-24 03:00 조회수 아이콘 323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과에 다니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저는 친언니의 권유로 처음 앤코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내면 소리함을 작성하는 방법을 쭉 읽어 내려가며 참 놀라운 감정을 느꼈는데, 다시 그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앤코이 재단을 처음 만났을 때, 앤코이가 지향하는 방향과 유사한 채널을 기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앤코이가 지향하는 방향을 담은 글들에는, 우리가 자라는 동안 의식이 자라고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그간 배우지 못했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존재 자체로 귀중하며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배우지만,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차별과 폭력을 경험했습니다. 개인의 세계 모형이 만들어지는 시기에 나의 존재 자체로는 사랑받을 수 없으며 사랑의 조건이 붙는다는 것을 어쩌면 가정 내에서 학교 안에서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나의 세계 모형은 어른이 되어서 스스로 에너지를 공급하며 견고해졌습니다.

그런데 태어나 처음으로 나의 세계 모형에 의문을 던지는 글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휴먼 드라마 장르의 영화로 예를 들자면, 인물을 변화시킬 발화점이 시작된 것입니다. 인물의 무의식으로 들어갈 만한 강력한 사건입니다. 에고는 원래 하는 방식대로 나를 통제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의심하게 하고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앤코이가 말합니다에 올라온 글들을 천천히 반복해서 읽어나가며 기존의 신념과 관점이 서서히 깨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은 해방이라는 감정을 동반했습니다. 앤코이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저는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제한하고 옥죄던 집착의 대상에게서 해방되었고, 나를 비난하던 콤플렉스에게서 해방되었습니다. 내 집착의 대상, 콤플렉스를 나의 정원에 누가 심고 갔는지 그리고 그것에 꾸준히 물을 주고 에너지를 공급하던 나의 모습을 관조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누구나 결점이 있고, 콤플렉스가 있으며 불완전한 인간이지만 그것을 수용하고 이해하고 인정하는 방법은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앤코이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나를 온전히 수용하는 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나를 수용하고 이해하자 나와 다른 타인의 모습을 어떤 폭력의 시선으로도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사회에 나타난 모든 폭력의 모습들은 어쩌면 나조차 나를 수용하지 못해서, 나를 너무 미워하는 모습과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의 시작이 나를 수용하고, 나를 알고,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은 치유의 감정을 동반했습니다.

앤코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그동안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강요받고 요구되었던 가치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프레임에서 해방되고, 그 프레임 속에서 상처받고 온전히 나로서 살 수 없었던 시간들을 치유하는 여정이 되어줍니다. 얽매임이 풀어질수록 사랑을 더 느끼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앤코이와 함께하며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새로운 발화점이 되어주신 앤코이 재단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어버릴 때마다 다시 이곳을 찾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앤코이와 함께 할 많은 분들이 앤코이를 발화점으로 나의 스토리를 써 내려가기를 바랍니다!


앞에서 저는 앤코이가 지향하는 방향과 유사한 방향의 유류브 채널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채널을 계획하게 된 계기는 비슷한 주제에 대해 어릴 때부터 관심이 있었고, 최근 들어 외적인 가치가 비정상적으로 거대해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외적으로 뛰어난 연예인을 비정상적으로 높게 평가하고, 외모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설파하는 콘텐츠가 생산되고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연애 프로그램 또한 외적인 중요성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외모가 뛰어나고, 학벌이나 직업이 좋은 사람들만이 프로그램의 출연 자격 요건에 해당합니다. 외면적 특성에 초점을 둔 문화는 많은 프레임을 만들고, 청년들은 보여주기에 좋은 경계,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택하는 패턴으로 세상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발전하고 급변하는 세상의 흥름 속에 휩쓸리기 좋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앤코이 재단이 진행하는 장학 선발 제도를 보고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앤코이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세상의 급변하는 흥름 속 에서 한 발자국 옆으로 벗어나 나의 여정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합니다. 살면서 꼭 필요한 소중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만약 장학금 신청기간 동안 제게 남은 인상 깊은 경험이 있었는지 묻는다면, 저는 제가 현재 다니고 있는 대학교 면접날이라고 답하겠습니다. 그 당시 저는 거듭된 실패로 자신감과 자기 확신을 많이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많이 지친 상태로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앤코이 질문에 애써 짜내어 답을 하던 제가 교수님이 주신 질문에 막힘없이 술술 답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질문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나다운 모습을 끌어내주고, 나의 가치를 알아봐준 경험은 소중합니다.


<영화 매트릭스에 빗댄 우리의 삶, 그리고 앤코이교육재단>

저는 영화 [매트릭스]를 통해 우리네 삶, 그리고 앤코이교육재단과 재단 홈페이지에 올려진 게시글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영화 [매트릭스]는 '우리가 보고 있는 인물은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향해 가는 과정을 담습니다. 그리고 진실로 그 인물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인물의 잠재의식에 의문을 던질 사건이 필요합니다. 의식적인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사건은 변화를 가져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물의 신념에 의문을 던질 '발화점'이 필요합니다.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속 인물이 변화하기 위해서 꼭 발화점이 필요한 것처럼, 인간의 삶 또한 그렇습니다.


저는 앤코이 재단이 <매트릭스>의 모피어스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앤코이가 말합니다' 게시판에는 그동안 의식이 자라고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배우지 못했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믿지 못하거나, 중간에 지쳐 버려서 사이퍼와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인식하고, 고요 속에 나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 담겨 있기에, 충분한 시간과 경험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경험의 인과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신념을 깨트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념을 깨트린다는 것은 그동안 살아온 방식과는 다른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은 나도 모르는 진실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기에 가치가 있습니다.

저는 실재와 환상을 구별하는 과정을 앤코이와 함께하며 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큰 해방감과 치유의 감정을 동반합니다.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콤플렉스와 집착의 대상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 패턴을 인식하자 동시에 나를 미워하는 것을 그만둘 수 있었습니다. 나의 콤플렉스와 집착의 씨앗을 누가 정원에 심고 갔는지, 그리고 그 씨앗의 물을 주고 있던 나의 모습을 관조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무기력의 근원이 단순히 쉬고 싶고 지친 상태가 아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몸의 반응으로 나타난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곧 사회로 나가야 할 나이, 첫 시도를 성공적으로 끝내야만 한다는 부담감과 두려움이 무기력이라는 반응으로 나타나서 저를 통제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식하자 오랫동안 미뤄왔던 도전을 두려움보다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준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이 여정의 부재로 인하여 시들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 사회의 두드러진 폭력과 차별의 근원 또한 이 여정의 부재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임을 씌우고, 타인과 나의 경계를 짓고, 행복과 성공의 유한함을 배옵니다. 하지만 행복과 성공이 경쟁하여 빼앗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이뤄질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프레임과 경계 속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그 본질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 여정 속에 살아간다면 누구의 모습도 그리고 나의 모습도 어떤 폭력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실재와 환상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진 사회속에서, 앤코이는 그 여정의 발화점이 되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 자체가 가장 위대한 예술'이라고 앤코이가 말했듯이, 우리는 모두 내 안에서 솟아 나오는 것으로 나의 스토리를 써야할 창작자입니다.



<외적인 것에 초점을 둔 문화를 해결할 실마리>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사실 '우리의 뇌가 만들어낸 현실의 재현이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뇌의 모형이 만들어지는 시기에 우리는 가정,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생존하는 법을 배웁니다. 즉, 특정 생존 욕구에 맞게 세계가 창작된다는 것입니다. 가정과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에는 미묘하지만 구체적이고 확실한 폭력과 차별이 존재합니다. 공부를 잘하거나, 외적으로 뛰어나거나, 특출한 재능이 있는 친구들은 대우를 받습니다. 계속해서 그런 폭력과 차별을 경험하다 보면 그것은 더 이상 폭력이고 차별이 아닌,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자, 우리의 이상으로 내면화되는 것입니다.

청소년 시기에 가정과 학교는 나의 세계 전부입니다. 그 세계에서 사랑받고 살아남는 것이 개인의 궁극적인 목표가 됩니다. 그때부터 나의 존재 자체로는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인식하고, 잠재의식 속에 사랑의 조건이 불기 시작합니다. 부모님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 동급생 친구들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서, 학교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 그 조건들을 나에게 강요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조건들은 앤코이가 말하는 '에고'의 목소리로 실제 나와는 괴리감이 있으며 완벽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그 괴리감 속에서 스스로를 갉아먹는 내면의 목소리가 힘을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유아부터 청소년 시기를 거치며 내면화된 사회의 관습이 이제는 개인의 세계 모형으로 굳혀진 것입니다. 나중엔 그 세계 모형에 의문을 던지고 바꾸려는 시도조차 거부합니다.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그 목소리에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면에 하나의 시선이 자리 잡게 되면, 개인은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어린 시절 자리 잡은 환영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잠재의식 속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죠.

우리는 자라며 계속해서 이원성의 세계를 경험합니다. 속한 사람과 속하지 못한 사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구분하여 경계를 지어버립니다. 그리고 경계 밖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교육받고 강요받고 스스로를 통제합니다.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수동적으로 자라난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어서는 능동적으로 그 세계를 지켜내고자 합니다. 비교하고 구분하며 우월의식에 빠지거나 혹은 좌절감과 자기모멸감에 빠집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폭력과 차별의 시선이 파생되는 것 갈습니다. 대한민국 교육 제도 안에서 성장한 청소년들이라면, 외면적 특성에 초점을 두고 대상을 바라보는 것은 어찌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동안 청소년들이 경험으로 배운 세계가 그러했으니까요.

요즘 2030세대의 구직 활동 부재 현상이 사회의 화두입니다. 이 현상의 근원에는 외면적 특성에 초점을 둔 문화의 폐단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타인의 에고가 넘쳐나는 SNS와 콘텐츠 속에서, 개인의 에고 또한 힘을 얻으며 부풀어 갑니다. 하지만 누구도 나의 언어를 듣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기에, 외면적 동기만이 나를 이끌어 방향을 잃게 하고,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사회가 점점 시들고 있는 것이 이제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심은 나무를 뽑으려면, 흙을 파내어 뿌리를 드러내야 합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실마리는 피상적인 해결책이 아닌, 문제의 근원을 다루는것에 있는 것 갈습니다.


저는 앤코이 재단이 지향하는 방향을 담은 글들을 읽으며 묘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나를 이유도 없이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근원지를 발견하는 느낌으로 긴 글들을 읽었습니다. 나를 무의식중에 옥죄고 있던 뿌리를 찾게 되니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깊은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나의 집착의 근원을 찾지 못하고, 계속 나를 탓하며 괴로워했던 시간을 오롯이 기억하기에, 앤코이가 지향하는 방향의 가치를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존재 자체로 개개인이 가진 가치와 강점을 인식시켜 주고, 그 강점으로 세상과 협력하며, 기여할 바를 찾아 가치를 실현하는 것'만이 외적인 것에 초점을 둔 문화를 해결할 실마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세상에 기여하고 싶은 가치>

저는 사람들에게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PD가 되고 싶습니다. 좋은 콘텐츠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중요한 가치를 선물하는 예술인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제가 만든 콘텐츠를 보는 순간만큼은 가장 온전하고 본래의 모습으로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창작합니다. 어느 날, 친구가 저에게 해준 말이 있습니다. '너와 있을 때 가장 온전해져' 저는 그때 나와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내 사람들이 가장 온전해지는 순간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많은 역할에 치여 많은 시간을 소비합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시간을 잘 살아낼 수 있는 것은, 그저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해준 시간들이 모여 나를 지탱해주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강점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지라도, 스스로 그 가치를 인정해주고자 합니다. 저의 가장 큰장점은 '내 사람들의 나다움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선물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제가 세상에 기여하고 싶은 가치입니다. 거창하고 대단한 것만이 가치를 가지지 않습니다. 작고 소소한 것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변화의 불씨가 되어 주니까요.



<세전메: 내가 봐줄 때 가장 빛이 나는 것>




세전메영상은 대학교 1학년, 전공 과제로 제출한 영상이며, 나의 강점에 대한 주제로 창작되었습니다.  저의 강점을 버스정류장이라는 공간에 비유하여 창작한 영상입니다. 강점의 사전적 의미와는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지만, 저는 강점의 의미를 내가 바라봐줄 때 가장 빛이 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남들의 인정으로 만들어진 강점은 일시적이고 오히려 집착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내가 인정해주고 바라봐줄 때 비로소 가치를 지니는 것이 나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해석을 담아 만들게 된 영상입니다.

실제 감사하게도, 나름의 해석을 통하여 만든 이 영상으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세전메 영상을 통하여, '강점은 반드시 비범하거나 남들보다 크게 뛰어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내가 인정해줄 때 가장 빛이 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물론 영상을 만들기 전에는, 강점의 사전적 의미와 맞는 남들보다 뛰어나고 대단한 능력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저는 항상 스스로 평범하고 남들보다 크게 뛰어난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시간이 고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내가 인정해준다면 남들의 기준에는 부합하지 않을지라도, 나의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남들이 칭찬을 해줘도 나의 에고만 커져갈 뿐, 나의 강점이 되진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내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그것은 남들의 평가에 따라 좌지우지될 집착의 대상이 되니까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강점의 사전적 의미를 '내가 봐줄 때, 가장 빛이 나는 것'이라고, 저만의 의미를 담아 생각하려고 합니다.  


이제 앤코이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으로 저의 글을 정리할까 합니다.

저는 앤코이 재단이 장학생을 선발하는 과정 속에서 많은 학생들이 저와 비슷한 소중한 경험을 얻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삶을 지탱해주며 좋은 방향성을 제시해줍니다. 저 또한앤코이 재단과 함께한 시간동안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을 기억하고, 앞으로 제가 걷던 방향으로 계속 걸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발화점이 되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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