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 플래티넘 선발자 < 세전메:"자신에게 진심을 다한 응원과 믿음을 주세요.">
장** 2023-09-25 20:48 1363
<엔코이 덕분에 울고 웃었습니다. >
희망장학생 지원서를 작성하면서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지원서 형식에 난감했습니다. 하지만 엔코이가 말합니다의 글을 정독하자 제 경험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어느새 저도 모르게 깊은 내면에 의식을 집중했습니다. 누군가 제 삶을 바라보고 적은 것 같은 글처럼 앤코이 게시글에는 제가 겪은 감정이 고스란히 글로 표현되어 있었고 그 글들을 읽으며 제가 그간 왜 방황했는지, 갈등을 겪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지원서를 작성하면서 힘들었을 때의 기억으로 펑펑 울기도 하고 고난을 극복해낸 기억에 스스로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장학지원서를 작성하면서 운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에 그 울음은 저조차 놀라게 했습니다.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다른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면서 저는 스스로 포장하고 좋은 점만 부각하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엔코이의 Noble 내면의 소리함은 작고 초라한 모습마저 저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단 한번도 해본 적 없었던 경험에 어색하고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평온함을 얻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질문을 읽고 글을 적기 위해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제가 숨기기 바빴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엔코이는 가족을 미워하던 제 모습, 타지생활에 외로워하던 저를 인정하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엔코이가 말합니다의 글을 읽으면서 과거의 나를 이해할 수 있었고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나를 인정하며 나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엔코이와 함께한 시간 동안 진정한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엔코이가 말합니다의 글을 정독하면서 제 경험이 떠오르고 어느새 내면을 바라보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힘들었던 기억으로 펑펑 울기도 하고 고난을 이겨낸 기억에 스스로 보람을 느꼈습니다. 엔코이 덕분에 저조차 잊어버리고 있던 나를 꺼낼 수 있었습니다. 모난 나를 인정하고 용서하니 내면의 동기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를 진심으로 움직이게 하는 건 주위 사람들에게 힘이 되자는 내면적 동기입니다. 가족 간 갈등을 해결하며 보람을 느꼈던 나를 떠올리며 주위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진정한 동기를 얻었습니다.
과거 저는 주위에서 부와 명예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을 보며, 가슴을 뛰게 하던 내 삶의 동기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계속 의심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엔코이의 글을 읽으면서 제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배웠고 진정한 내면의 동기를 내가 올바로 찾았구나!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아래는 신청서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덕분에>
주말마다 우리 가족은 항상 친할머니댁에 가야 했다. 친할머니댁에 가면 친할머니는 엄마를 “야”라고 부르며 무시하고 나에게는 “가시나는 시집가면 소용없다”와 같은 말씀을 하시며 엄마와 나에게 상처를 주셨다. 우리가 할머니 집에 가기 싫다는 말을 하면 전형적인 가부장 권위를 가지신 아빠는 우리를 죄인 취급하며 어김없이 혼내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항상 함께여야 했고 완벽해야 했으며, 아빠와 다른 의견은 허용되지 않았다. 엄마는 주로 나에게 하소연했고 나는 친할머니와 아빠에 대한 미움을 품게 됐다. 심지어 죽고 싶어할 정도로 괴로워하는 동생을 보며 나는 방 안에서 펑펑 울었다. 그리고 동생을 데리고 이 집을 떠날 용기와 능력이 없는 자신을 원망했다. 아빠를 이길 만큼 성공해 집을 나가겠다는 마음으로 독하게 공부했고 그렇게 과학고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내내 기숙사에서 살면서 아빠와 부딪힐 일도 없고 친할머니댁에 갈 일도 거의 없어지면서 마찰 자체는 줄었지만, '아빠는 답답하고 말이 안 통한다'는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과학고에 입학한 뒤 할머니는 더 이상 ‘가시나가 공부해서 뭐 할라고’ 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 내가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 입학하자 마을 입구에는 현수막이 걸렸고 할머니는 마을에 떡을 돌리셨다. 나는 그렇게 할머니께 가시나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우리 손녀딸'이 되었다. 그 자랑스러운 손녀딸은 할머니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실 때마다 예전에 할머니께 받은 설움, 엄마가 겪었던 설움을 생각하며 할머니에 대한 반감은 더 커졌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는 테니스가 취미인 아빠를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테니스 동아리에 가입했다. 아빠를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테니스를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시험 기간에도 잠을 줄여서 칠 정도로 테니스가 좋아졌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테니스를 시작했던 아빠는 딸이 테니스를 시작한 이유는 꿈에도 모른 채, 테니스를 치는 딸을 보며 자신의 대학 생활을 회상하며 아빠의 취미를 배우는 딸을 기특해 했다. 아빠는 방학 때마다 나에게 테니스를 가르쳐주고 테니스 대회에 나간다고 하면 특훈과 함께 자신이 쓰던 보호대를 선물해 줬다. 테니스를 치면서 처음으로 아빠를 미움 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의도치 않게 아빠와 가까워지면서 아빠도 부족한 점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때까지 아빠는 한 개인이 아니라 부모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완벽할 거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화를 내고 트집 잡는 모습에 실망하고 미워했다. 하지만 아빠도 사람이었고 결핍이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아빠를 이해하게 되면서 지금은 아빠와 테니스도 많이 치고 진로 고민을 나눌 정도로 사이가 좋아졌다. 내가 아빠의 말을 들어주기 시작하면서 아빠도 이제는 내 의견을 무시하지 않았고 아빠가 바뀌기 시작했다.
최근 6월 참깨를 심는 기간, 크게 혼날 각오를 하고 할머니 집에서 참깨 모종을 심기 싫다고 말을 했더니 자기도 대학생 때 기말고사 기간마다 고추 따러 오는 게 싫었다며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바쁘면 오지 않아도 되지만 아빠가 부탁하면 고려는 해달라고 말씀했다. 순간 나는 내가 잘못들은 줄 알았다. 아빠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아빠와 내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나도 알 수 없었는데 엔코이 교육재단의 ‘단순히 Z세대들만의 문제일까요?’ 글을 읽으면서 할머니, 아빠와 나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그것이 어떻게 해소될 수 있었는지 명확히 정리됐다.
친할머니댁은 지금도 하루에 버스가 4대만 다니는 골짜기 시골 마을이다. 그런 곳에서 차남으로 태어나신 친할아버지는 차남이라 물려받은 땅이 없었고, 친할머니와 소작하면서 5남매를 키워냈다. 쌀이 없어서 작은 할아버지 댁에 쌀을 꿔야 할 정도로 가난했던 친할아버지네는 당연히 자식들에게 정서적으로 돌봄을 줄 만큼 여유가 있지 않았다. 심지어 농사는 버려두고 노름하던 할아버지 탓에 할머니는 집안일부터 농사일까지 모두 떠맡았고 그러면서 외골수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자식은 자신보다 더 잘되라는 마음으로 할머니는 자식들 모두를 부산으로 보냈고 막내인 우리 아빠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부모님 없이 타지에서 생활했다. 아빠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은 아버지보다 가족에게 충실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마음은 아빠가 가족에 집착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고생하는 친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안쓰러움이 마음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심지어 초등학교 3학년부터 부모님 없이 무엇이든 혼자 해내야 하고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마음으로 생활하면서 완벽주의적인 사람이 되었다.
엔코이에서 말하는 것처럼 X세대인 아빠는 권위주의를 적극적으로 부정하고 자식 세대에 물려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무의식중에 부모 세대로부터 받아들인 권위주의, 전체주의적인 모습을 가진 사람이었다. 태어났을 때는 일제강점기였고 한국전쟁과 함께 유년기를 보낸 친할머니는 먹을 것이 없어 나무껍질을 벗겨 먹어야 할 정도로 가난했다고 한다. 당장 먹고살기 바빴던 시대에 할머니는 글을 배울 여유조차 없었고 생존 앞에서 감정은 사치로 여겨졌다. 결혼 후에도 가정에 소홀한 할아버지 때문에 농촌사회에서 남성 몫까지 다 짊어져야 했고 더 강하고 거친 사람으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엔코이의 조부모, X, Z세대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과거에 내가 왜 친할머니와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는지 느꼈다. 지금까지 막연하게 시간이 흘러서 관계가 나아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가 그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 조금씩 이해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친할머니와 아빠가 왜 지금의 성격과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을 읽고 친할머니와 아빠에게 더 깊게 공감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최근의 엄마와 나 사이에 갑자기 생긴 거리감의 원인도 엔코이의 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엄마와 나는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둘도 없는 친구 같은 모녀로 지냈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친할머니댁에서, 아빠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나에게 하소연했고 나는 그걸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엄마의 감정을 내 감정으로 인식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까지는 내 인간관계는 가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괜찮았지만, 대학생이 되고 동아리, 인턴, 교환학생을 경험하며 내 사회를 구축하면서 나는 가족관계에 매몰되어 있는 듯한 엄마가 답답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엄마의 감정에 이입이 돼서 나까지 힘들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엄마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 했고 그렇게 우리는 점점 서로 멀어지게 되었다. 잠시 본가에 있는 6월 한 달 동안 밤마다 엄마와 나는 항상 같이 산책했다. 내가 어릴 땐 산책할 때마다 둘 사이에 수다가 끊이질 않았는데 지난 한 달간은 정적이 더 많이 흘렀던 것 같다. 연구실 인턴을 위해 본가를 떠나기 하루 전 나는 산책을 하던 중 엄마가 나에게 응원과 공감을 해주지 않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울면서 자신이 하는 말을 딸인 내가 듣기 싫어하는 것 같아서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순간 내가 엄마에게 무슨 일을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엔코이에서 말하는 딸과 엄마의 관계 균열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사과하면서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엄마가 내가 없을 때 뭘 하고 지내는지 궁금하고 아직 나는 엄마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뒤로 나는 엄마와의 관계를, '친구같은 모녀 사이'라는 개념을 넘어 '내게 매우 소중한 관계'로 여기기로 마음먹었다. 소중해서 잃을 수 없으니 서로 서운함을 말하고 맞춰주며 오래갈 수 있는 관계가 되고 싶었다. 요즘 나는 매일 엄마의 안부를 묻는다. 오늘은 누구를 만났는지 무슨 반찬을 먹었는지 사소한 일들을 물어본다. 엄마도 처음 출근하는 나를 응원해주고 퇴근하고 내가 피곤하다고 하는 응석도 받아준다. 지금 엄마와 내 사이는 예전과 달라졌다. 서로에게 감정을 쏟아붓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라 서로를 응원하고 더 잘되길 바라며 격려해 주는 든든한 지지자가 됐다. 엄마도 바뀌고 나도 바뀌면서 관계도 발전한 것이다.
엔코이가 말하듯이 Z세대인 나는 엄청난 특혜를 받았다. 무섭게 변하는 세상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민첩하게 대응하는 능력을 줬다. 조부모, X세대가 투쟁한 덕분에 생존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생명력을 누릴 수 있다. 친할머니 세대가 감정을 억누르며 생존을 위해 애쓴 덕분에, 아빠가 권위주의를 탈피하려 애썼기 덕분에 나는 전체적으로 세대 갈등을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거부하기만 했던 조부모, 부모 세대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그 모든 것들 덕분에 친할머니 아빠 나에게 이어져 온 세대 간 갈등을 파악할 수 있었고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용기를 내 아빠에게 “아빠 어릴 때 혼자 지내면서 설움 많이 당했겠다. 젊을 때 놀지도 않고 우리 먹여 살리느라 고생했겠다.” 말했을 때, 평생 가족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기만 하시던 할머니께 떡볶이를 만들어드렸을 때, 정체되어있던 우리는 나아가기 시작했다. Z세대들에게는 세상을 다시 만들어 낼 힘이 있다는 말을 엔코이가 말합니다에서 처음 봤을 때 나는 ‘어리기만 한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Z세대인 우리는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우리는 세대 간의 갈등을 파악하고 나와 다른 세대를 이해하며 성장해 나갈 능력이 있다. 관계를 성찰하고 극복할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 조부모, 부모 세대의 투쟁으로 얻은 사랑과 감정을 바탕으로 윗세대들이 직면하길 미뤘던 세대 갈등을 해결할 용기를 낼 수 있다.
<눈 속에 숨겨둔 진심>
‘대학에 가면 다 괜찮아져’ 내가 고등학생일 당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그때 나는 현재를 희생해서 더 나은 미래를 얻는 중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입시 스트레스로 생긴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잠을 못 자도,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도 석식 시간에 수액을 맞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공부할 수 있었다. 대학에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대학에 가면 나는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매일 대학생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하고 버킷리스트를 채우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뒤 느낀 해방감도 잠시 그 어디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없었다. 대학에만 붙으면 세상이 달라질 거라는 내 기대와는 다르게 세상은 그대로 돌아가고 나는 예전과 똑같았다. 대학에서는 학업에 대한 부담을 덜 느끼면서 공부를 즐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내 버킷리스트에는 즐기면서 공부하기라는 항목이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 이미 공부에 대한 거부감이 생겨버린 나는 대학에 와서도 공부를 위해 앉아있는 모든 시간이 고역처럼 느껴졌고 버킷리스트의 그 항목은 평생 못 지울 것 짐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대학 입학 후 고등학생 때부터 겪었던 숨이 차고 두근거리는 증상은 더 심해졌다. 막연히 ‘대학에 가면 스트레스가 덜하니까 괜찮아지겠지’라며 넘겨왔다. 하지만 증상은 갈수록 더 심해져 일상을 잠식했다. 시험 칠 때, 공부할 때를 넘어 기숙사 입사 신청을 위해 간단한 서류를 제출할 때조차 잘못 제출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에 숨이 차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가만히 있을 때조차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는 초조함에 숨이 막혀왔다. 대학에 와서 더 괜찮아지지 않고 일상생활이 더 힘들어지자, 나는 병원에 갔고 불안장애를 진단받았다. 가만히 있으면 불안장애 증상이 더 심해져 가만히 있는 시간을 견딜 수 없었던 나는 학업을 제외한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테니스 동아리, 댄스 동아리, 사진 동아리를 비롯해 학생회 활동, 멘토링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려 했다. 아침 7시에 테니스 동아리 훈련을 가고 저녁에 헬스를 하고 새벽에는 댄스 연습을 하며 몸을 혹사했다. 그렇게 바쁘게 살지 않으면 내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젊은 나의 시간을 밀도 있게 보낸다는 보람으로 하루하루를 버텼지만, 그런 생활을 지속하면서 몸과 마음이 소진되며 번아웃이 찾아왔고 도망치듯 교환학생에 지원했다.
교환학생으로 도착한 미국 북부는 영하 30도에 달하는 날씨로 내가 생각하던 낙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곳에서 처음 느끼는 고독함에 서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고 엔코이가 말하는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바로 ‘내가 어떠해야 한다’라는 타인의 말에서 벗어나 나에게 솔직할 수 있던 기회가 된 것이다. 처음으로 내 내면의 소리를 듣고 감정을 억압하지 않으며 나를 찾아갈 수 있었다. 해가 길고 눈이 5월까지 오는 그곳에서는 저녁에 일찍 자다 보니 일찍 일어나게 되고 등교 전 스트레칭을 할 시간이 생겼다. 환율과 물가가 급격하게 올라 반강제적으로 요리를 해서 삼시 세끼를 만들어 먹었다. 나를 위한 시간을 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날씨가 풀리는 날이면 주위 시선은 상관 하지 않고 수영복을 입고 공원에서 태닝하는 사람들을 보고 수업 중에도 눈치를 보지 않고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왔는지 느꼈다. 나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행복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나를 기만했다. 고등학생 때는 없는 시간을 내서라도 소설을 읽었는데 대학교에 와서는 사람들이 작가가 될 것도 아니면서 왜 소설을 읽냐고 하는 말을 듣고 점점 문학보다 경제 분야 서적, 자기개발서를 읽었다.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이 나를 위한 길이라고 속여왔다. 하지만 밖에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오는 그곳에서는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소설을 읽었다. 드디어 스스로 솔직해진 것이다. 공대에서 공학을 공부하지만 자기 전 소설을 읽고 일기를 쓰는 시간이 나를 구성하고 지지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타인의 의견에 신경 쓰기보다 나를 채우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나에게 솔직해졌을 때 진정한 행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엔코이가 말하는 성장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정의한 내가 아니라, '내가 되고자 하는 더 이상의 존재'가 되는 것, 그게 진정 나다운 것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좋은 성적, 높은 학벌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샌드위치를 만들고 요가를 하고 쌓이는 눈을 바라보면서 책을 읽는 순간들, 그 순간들이 나를 구성한다는 걸 배웠다. 나에게 솔직해지자, 일상을 잠식하고 있던 불안 증상들도 완화되었다. 나를 위한 시간은 내 내면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내가 불안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돌이켜볼 수 있는 여유를 줬다. 불안을 피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마주하고 더 깊게 살펴보면서 내 불안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할까, 미움을 받을까’라는 마음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피하지 않고 불안을 마주하자,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받는 인정이 나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 것을 알게 되자 불안이 서서히 옅어졌다.
엔코이가 말하는 성장을 읽고 그 글에 내가 내면을 견고하게 만든 경험을 비추어보면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진정한 내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아무리 불안한 순간에도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나를 믿어주려 한다. 겁도 없이 타국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내가 문학을 좋아하고, 눈을 보며 책을 읽는 순간을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처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려 한다. 그 도전에서 나를 구성하고 지지하는 순간을 더 발견하겠다. 그 경험을 기억하며 더 단단해지겠다. 내면의 단단함을 기반으로 다른 사람에게 내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누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진정한 내가 되어가겠다.
<힘이 되는 마음>
‘꺾이지 않는 마음’이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이다. 이 마음은 내가 주위에 흔들리지 않고 내면을 살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 때문에 상처받기도 하고 내면을 살펴보다 발견한 완벽하지 않은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용기를 잃기도 하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이다. 그 마음을 잃지 않았기에 진정한 나를 발견해 나가는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지금의 내가 있게 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끈기다. 시련이 나에게 오더라도 나를 믿고 나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끈기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타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음 덕분에 성장하며 정서적 안정과 가족 간의 이해를 배웠다. 덕분에 가족들은 웃음을 되찾았고 에너지를 얻는다. 포기하지 않고 시련과 부딪혔기에 이제는 시련이 실패가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배울 기회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어떤 시련이 다가와도 바르게 쌓은 자아효능감을 바탕으로 시련을 마주할 자신이 있다. 이전의 나는 카이스트에서 이렇게 많은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정서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말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고 나는 내가 겪은 불안장애를 이야기해 주며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위로했다. 친구가 많이 힘들어하는 경우는 상담받아도 되고 약의 도움을 받아도 된다고 그렇게 서서히 너는 괜찮아질 수 있다고 응원했다.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니 어릴 때부터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불안과 긴장 속에서 사는 것이 당연해져 이것이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본인의 마음을 살피지 않으니 힘들어하는 원인을 찾지 못한 것이다. 내가 이야기를 들어줬던 친구들이 시련을 극복하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다시 얻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보람을 느꼈다.
그 이후로 1학년 새내기 신입생을 대상으로 멘토링과 상담을 해주는 새내기 지도그룹으로 지원했고 이번 가을 학기부터 활동을 시작한다. 새내기 지도그룹으로 활동하면서 내재적 동기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신입생들에게 도움을 주려 한다. 더 많은 사람에게 안정된 마음과 지지를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블로그를 만들었다. 내가 어떻게 내면을 채울 수 있었는지 글을 작성해서 게시하고 도움이 되었던 책을 포스팅했다.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을 정기적으로 포스팅하려 한다. 내면을 성찰하며 성장한 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퍼트리며 행복을 느끼는 내재적 동기를 인지했다.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새내기 지도그룹, 블로그 포스팅을 시작했다. 앞으로 직업을 갖고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에서도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내가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일을 탐색하겠다. 내면을 성찰하고 갈고 닦으며 이 내재적 동기를 잃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이 소중한 동기를 바탕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 성장하는 사람이 되겠다.
"자신에게 진심을 다한 응원과 믿음을 주세요."
저는 그간 실패가 두려워 매 순간 불안 속에 살았었습니다. 그런 저였지만 엔코이의 글을 읽으며 '진정한 자신'과 연결되어 있기만 하다면, 심지어 실패 속에서도 내면에 귀기울이며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실패하더라도 제가 더 성장하고 노력하며 이겨낼 것이라는 것을 엔코이 덕분에 느꼈습니다. 실패한다 하더라도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도전이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나를 깨달은 순간 저를 둘러싸고 있던 세상은 달라졌고 저는 이제 그 세상에서 온전한 나로 살아가려 합니다. 진정한 나에 연결되었을 때,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와의 연결감 속에서, 저는 실패해도 그리고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것이 무엇인지 드디어 알게 되었습니다.
지원서를 작성하며 다짐했듯 주변을 밝히는 사람이 되려 끊임없이 도전하겠습니다. 역경 앞에서도 성장해나가겠습니다.
세상에는 아직 내면을 성찰하지 못하고 자신을 무능력하다고 생각하는 Z세대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탓이 아니라 어떻게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정체된 것입니다. 다른 젊은 Z세대 분들이 내면을 성찰하고 여러 경험을 하면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제가 가족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시작점이 된 것처럼 모두가 자신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는 용기를 주고 싶어 세전메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교환학생 생활 동안 어떻게 내면을 성찰했는지, 그 과정으로 어떻게 제가 바뀌었는지와 함께 앞으로 더 성장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았습니다.
<마치며...>
글을 쓰는 시간 동안 그렇게 깊고 넓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엔코이와 함께한 시간 동안 진정한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엔코이 덕분에 저조차 잊어버리고 있던 나를 꺼낼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해줄 엔코이를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