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코이 글을 읽고 지금껏 저를 몰아붙여 왔던 열등감의 굴레를 끊고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유** 2023-09-18 23:00 48
“경쟁사회였던 과학고”
고등학교 때 과학고등학교를 나와 학우들간 경쟁이 심했기 때문에 어느 중학교 출신인지, 올림피아드 출신인지 등으로 친구들끼리 우열이 가려졌습니다. 저는 특출난 중학교를 나온 것도, 별다른 교외활동을 한 것도 아니었기에 그 과정에서 계속 자아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했음에도,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나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을 선별해야 한다는 관념이 박혔고 저에게 이득을 줄 수 있는 이에게는 상냥하게, 그렇지 않은 이는 무시했습니다. 아마 무시하는 신 청 번 호 재단에서 작성 과정에서 내가 남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기분이 들어 자아가 회복된다고 느꼈기에 그렇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고 따지는 과정에서 타인은 제 감정을 느끼고, 묘하게 차별하는 제 태도에 타인은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그러면 타인은 저에게 거리를 두었고 그렇게 멀어지고 나면 저는 소외감을 느끼고 사회적으로 저를 지지해주는 안정감을 타인에게서 얻지 못한 채 악순환을 반복했습니다. 경험적으로 집안이나 외적 특성으로 판단하는 문화는 해롭다는 사실을 압니다. 이를 더 정돈된 말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한 경쟁 사회와 악순환”
첫 번째로, 타인과의 경쟁에서 완전한 우위에서 설 수 없으며 내가 남을 판단한 만큼 나 또한 남에게 판가름 당하는 악순환이 일어납니다. 항상 고등학교에서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열등감에 휩싸일 때마다 저는 제가 왜 이러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머리로 주입된 예의로는 외적인 요소로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데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이미 우위를 재고 있었습니다.
타인보다 아래에 있다는 기분은 너무 불쾌해서 이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면 더 높은 곳에, 더 무시할 수 없는 곳에 올라가야 한다는 강박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계속 소진되었습니다. 아무리 성취를 이룬 것 같아도 모자라다고 느꼈습니다. 당연하게도, 제가 아무리 높게 올라간다고 한들 그곳엔 나보다 ‘학문적 성취’가 뛰어난 사람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 상황에서 저는 무시당할 까봐 불안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악순환의 근원”
이 악순환의 근원을 ‘앤코이가 말합니다’ 속 글을 보고, 제 에고 속 자아가 제 또 다른 자아에게 공격하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공격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사실은 제가 큰 해방감을 가져가 주었습니다. 저는 이미 제 성적, 대학은 정해져 있기에 앞으로도 계속 열등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타인의 무시로부터 저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를 괴롭히던 열등감의 근원은 제 자아였고, 제 스스로의 무의식 속 반복되는 행위를 인지하면 그 열등감의 굴레는 끊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앤코이가 말합니다’의 글은 제가 지금껏 저를 몰아붙여왔던 제 심리를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무리 높은 성적을 받아도 대학 이름으로 남들과 비교하며 자책하는 제 스스로가 너무 버거웠는데, 제가 저를 공격한 거라니 알고 나서 허탈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 해결할 기회가 떠났다고 자포자기했던 지난 날보다는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보이는 현재가 더욱 낫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모두가 평등한 인간”
두 번째로, 제가 성장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중요한 요소 하나를 두고(저로 따지자면 학문적 성취) 남과 자신의 우열을 가리지만, 인간은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타인보다 학문적 성취에서 뛰어나다면 타인은 인간관계 요소에서 저보다 뛰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절대적 우열관계가 있을 수 없고 어느 사람이던 저는 배울 요소가 있습니다. 저보다 못난 사람은 없고, 저보다 잘난 사람 또한 없습니다. 모두 뛰어난 요소는 다르고, 평등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좁은 식견으로 인해 자신이 중요시 여기는 요소 하나로 줄을 세우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배제하는 행위를 하면, 자신이 배제해버린 타인으로부터 다른 요소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이는 자신의 성장에 방해가 됩니다.
예시로, 제 팀 프로젝트의 일이 떠오릅니다. 제 전공과목 중 한 학기동안 팀을 이뤄 연구 주제를 정해 성과를 발표하는 과목이 있습니다. 팀 프로젝트 중, 한 선배가 실험기기의 원리(XPS 피크 분석법, raman spectrum 의 원리)를 질문했습니다. 과학고등학교 출신이고 성적이 잘 나온다는 이유로 남을 얕잡아봤던 저는 실험 결과를 교수님께 전달하는 게 제일 중요한데 왜 이런 사소한 걸 질문하나 했습니다.
그런데 발표하는 날, 교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물었던 게 각 실험기기의 원리였습니다. 각 실험기기의 원리에 대해 어렴풋하게 파악하고 있어 저는 대답을 잘 해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결과 내는 것에 급급해서 기본적인 걸 놓쳤습니다. 제가 당장 지식은 많을지라도 자신이 모르는 걸 파악하는 능력, 팀원에게 모르는 걸 당당하게 물어볼 수 있는 용기는 선배한테 배워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제가 사람을 볼 때 내세우던 편협한 기준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남들보다 어떠한 요소가 뛰어나다고 얕잡아보지만, 같이 지내보며 관찰해보면 어떤 사람이든 제가 배울 수 있는 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정리를 하자면, 외적인 요소로 타인을 판단하고 줄세우려는 행위는 자신을 높은 위치에 올리기 위한 무한 경쟁으로 내몰고, 타인의 장점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킬 기회를 없앱니다. 사람 사이에 우열이 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를 지옥으로 내몰게 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 위치가 어디인지 가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위해서라도, 성장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러한 문화는 지양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기성세대가 말하는 것 중 지혜도 있지만 관습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예시 중 하나로 남들이 가는 보편적인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한국에선 보장된 길이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전문직, 공무원, 공과대학 전화기(전자공학과, 화학공학과, 기계공학과) 등등… 그 길을 가면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으니 자신이 진정 원하는 길을 가기보다는 성적 맞춰서 보장된 길을 움켜잡으라고 합니다. 저는 그 말에 흔들렸었습니다.
“취약계층에게 기후위기란”
저는 친환경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가 당장 살아가는 이 지구에 닥친 위험이 제 피부로 생생하게 와닿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적에는 여름에 베란다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틀면 충분히 시원해져서 여름을 잘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름에 더위가 점점 심해지고 폭염주의보 횟수가 늘어났습니다. 집에 오래된 에어컨을 중고로 받아 설치해 놓았지만 어머니는 전기세가 무섭다며 정말 더울 때만 틀라고 하셨습니다. 여름방학에 더위가 심해 무언가를 할 힘이 들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더위의 괴로움이 전기세의 무서움보다 앞설 때 겨우 몇 번 틀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기후위기의 영향은 더위를 피하기 위한 전기세조차 두려운 취약계층에게 가장 먼저 찾아간다는 사실을 몸소 깨 달았습니다.
기후 위기의 피해는 모두에게 찾아가지만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건 사회적 기반이 약한 취약계층입니다. 그리고 미래를 살아갈 후대는 더욱 심한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저는 기후위기로 인해 오염된 환경을 물려받을 미래 세대에게 미안함을 느낍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언제든 저에게 찾아올 수 있기에 제가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직장을 가진다면 이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직장을 가지고 싶다는 꿈을 청소년때부터 꾸었습니다. 그래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화학공학과를 선택했습니다.
“친환경 VS 논문실적”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연구직을 가야하기에 대학교 때 연구실 경험을 쌓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 학과에서 가장 논문 실적이 좋은 고분자 연구실로 석사 생각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들어갔습니다. 대학원생 커뮤니티를 가보면 모두가 관심분야보다는 성과가 잘 나오는 곳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성과가 잘 나오는 곳으로 가야 높은 자리에 취업해 돈을 벌기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제가 과학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과 같은 과학고등학교 출신이라 믿음이 간다면서 마음에 들어하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진정 연구하고 싶은 분야라서 간 게 아니라 실적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들어간 것이 패착 이었습니다. 고분자 연구실은 친환경 연구를 접목하기엔 두 분야 사이에 연결 요소가 희박했고 해당 연구실에서 친환경 연구를 해본 선례가 없기에 배울 수 있는 선배도 없었습니다. 연구를 하는 과정은 즐거웠지만 제가 진정 원하는 연구는 아니라는 사실에 교수님께 연구실을 나오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자신의 연구 분야가 실적이 잘 나온다며, 왜 자신의 연구실 석사 진학을 하지 않냐고, 남들은 쉽게 쉽게 가는 길을 너는 왜 이리 어렵게 생각하냐고 타박을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성공이 보장된(또는 보장되어 보이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을 선택하지 않는 자신이 바보같아 보이지만, 실적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좋다는 사실을 이상 친환경 분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연구실을 나왔습니다. 그 후 친환경 에너지 연구실에서 학부연구생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로 제가 제 말에 귀를 기울이며 저에게 맞는 길을 선택하는 행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세상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 보장된 길은 확률적으로 성공을 얻기 쉬워 보여도 그 일을 하는 당사자는 타인의 시선에 갇혀 진정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타인이 인정해주는 길이 매력적으로 보일지라도 그 유혹에 굴복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보장된 길은 세상에 없고, 저에게 맞는 길은 스스로 생각해서 골라야 한다는 삶의 태도를 배웠습니다.
“돈도 지키고 자원도 아끼고”
저의 어머니는 항상 절약을 강조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부재하셔 어려운 형편에 고정지출비를 줄이고자 양치할 때엔 항상 물컵을 쓰고, 화장지는 항상 두 칸만 사용해야 하며, 비어있는 방에 형광등을 끄지 않았으면 크게 혼났습니다. 처음엔 제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매번 깨닫는 기분에 어머니의 말에 반발심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통장을 보며 한숨을 쉬는 어머니를 보고, 형편이 어려워 돈을 조금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 최대한 자원을 절약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세계 주요 20개국은 전체 탄소 배출량의 4분의 3 이상을 차지하며 대기 중 온실가스의 주범은 현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후위기란 산업혁명 시대에 배출된 온실가스 때문이라고 남의 탓을 해왔습니다. 이와 더불어 기후위기로 인해 피해 입는 건 제3세계 인구, 취약계층이므로 남의 일이 아니게 느껴졌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며 자원을 소비하는 자신이 원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책임의식을 가지며 자원을 자의적으로 아끼게 되었고 주변인에게도 친환경 활동을 장려했습니다.
“신재생 에너지 학부연구생 활동”
저는 친환경을 위해 개인적인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기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친환경 에너지 연구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재생 에너지 연구실에서 한 학부 연구생 활동 중입니다. 저의 장래희망은 신재생 에너지 연구원이므로 연구실에서 이뤄지는 연구를 직접 보고 겪어보고자, 작년 2학기부터 현재까지 연료전지 구동 중에 발생하는 라디칼을 제거하기 위한 촉매를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연구 과정을 통해 저는 제가 모르는 지식이 있음을 발견하면 희열이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실험결과가 잘 나오지 않을 때엔 연구가 저와 잘 맞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조급함이 들어,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는 쉽게 좌절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지진부진한 시간이 흘러가다가 새로 도입한 촉매 합성을 통해 가끔씩 실험 결과가 좋게 나오면 제 지난 시간이 다 보상을 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느 요인 때문인지 분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고, 결과를 해석하기 위해 관련 지식을 얻을 때면 흥미를 느낍니다. 전공 수업에서는 딱딱한 지식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실험을 통해 생생하게 겪으니 재미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역시 저는 연구를 통해 제 지식을 넓혀가는 과정을 즐기고 시련이 있더라도 학문의 즐거움을 양분으로 헤쳐나갈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아직은 주변 시선을 의식하며 더 높은 성취를 얻으려고 하고, 부를 빨리 축적하고 싶어하는 자아가 제 안에 있음을 느낍니다. 그 자아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더 많은 인지 연습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 중에서도, 연구 중에 실험 결과가 좋을 때면 제가 얻게 될 외부 성취보단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이 먼저 차오르기에 연구는 제가 제 거짓된 자아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활동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