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코이에게 전합니다

5기 선발자) 엔코이 재단 지원서를 제출한 후, 외롭고 막막했던 제 인생에도 환한 불이 켜졌습니다.

이** 2024-07-28 22:24 조회수 아이콘 14



<엘리트 태권도 선수로서 국가대표를 꿈꾸다 중증 근무력증을 진단 받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엘리트 태권도 선수로 활동하며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몸에 힘이 빠지고 사물이 두 개로 보이는 증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명확한 진단을 받지 못하다가, 16 살에 이르러서야 중증 근무력증이라는 희귀병을 진단받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저의 전부였던 태권도 선수로서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새로운 현실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제 건강 상태는 계속해서 악화되어 갔고, 기본적인 일상생활조차 혼자서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팔과 다리에 힘이 없어 혼자 씻거나 옷을 갈아입을 수 없었고, 늘 어머니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화장실도 혼자 가지 못해 성인용 기저귀를 착용해야 했습니다. 예전에 운동선수였던 저는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지만, 저보다 작으셨던 어머니는 늘 저를 들어 옮기고 씻기셨으며, 숟가락을 잘 들지 못하는 저에게 매일 밥을 먹여주셨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저의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습니다. 저의 일상 활동을 도와주셨고, 제가 힘들 때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팔다리 근력 저하뿐만 아니라 성대 근육과 호흡근도 약해져 입안의 침도 삼키지 못해 늘 사레가 걸렸고 먹지도, 제대로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가르침을 준 분은 저의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유머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유머가 없었다면 저는 세 번의 중환자실과 수술, 셀 수도 없이 많았던 입원 치료를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 괴롭고 힘든 치료를 받으며 고통스러웠지만, 어머니는 고통에 위로가 아닌 유머를 더해주셨고, 덕분에 인공호흡기를 끼면서도 웃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어머니에게 배운 것은 유머입니다. 아무리 힘든 삶이라도 유머가 있다면 고통스러웠던 기억도 추억과 경험으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유머 덕분에 저는 가장 힘든 순간에도 긍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었고, 이러한 어머니의 모습은 저로 하여금 인생의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Noble 내면의 소리함을 작성하면서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은 무엇인지 며칠간 고민해 봤습니다.

두루뭉술하게 느끼고 있던 마음을 엔코이 재단 덕분에 이렇게 글로 적고 생각해 보는 과정을 통해

저가 어머니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를 정확히 인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의 의식을 한 단계 더 높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를 다시 살게 한 이야기’


온몸에 마비가 온 것처럼 움직일 수 없던 어느 날, 침대에 누워서 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오디오북 광고를 보게 되었고, 저는 그날 바로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여 오디오북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들은 책은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였습니다. 우울감을 겪고 있는 주인공이 라스베이거스로 떠나며 삶의 희망을 다시 찾게 되는 이야기였죠. 책이 끝나자 저의 마음속에도 희망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소설, 자기계발서, 고전 문학, 심리학, 의학 등 다양한 책을 보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왜 우울해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제 원래 성향은 활발하고 진취적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난한 가정에서 어머니와 둘이 살았기에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야망도 컸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프고 난 후, 현실적인 어려움은 더 커졌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더 우울해지고 무력한 마음이 들었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책을 보며 블로그에 독후감을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고, 작은 수입이지만 블로그 애드포스트 수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방법을 고민하다가 글이 아닌 책을 소개하는 애니메이션 영상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고, 저는 곧바로 영상 편집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유튜브로도 소소하지만 수익을 만들어가며 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만히 누워만 있던 저를 조금 더 진취적으로 살게 바꿔준 것은 바로 책이었고, 신기하게도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니 마음의 병도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통해 수많은 저의 멘토와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큰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책을 읽으며 더 많은

진취적인 일을 하고, 엔코이 재단처럼 이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주는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인생의 벽을 마주하신 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모든 벽은 넘을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저와 같은 인생의 벽을 마주하고 계신 분들을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살면서 누군가 갑자기 발목을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할 때도 있죠.

저는 어린 시절부터 엘리트 태권도 선수로 활동하며 거의 모든 시간을 운동에 쏟았습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등교 후 조례만 하고 부실로 가서 오전 운동을 하고, 점심을 먹고 다시 부실로 가서 오후운동을 하고, 야간 운동까지 마친 뒤 어두운 밤하늘 아래 집으로 돌아가던 시절이 기억납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근육을 쓸수록 근육이 약해지는 희귀병을 진단 받았습니다. 진단을 받은 후에도 독한

약을 먹으며 1년 정도 발버둥 치듯 계속 운동을 했습니다. 제 꿈은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는

것이었고, 그 외의 꿈들을 생각해봐도 소방관, 경찰관 등 건강한 신체를 요구하는 직업들뿐이었습니다.

그게 저에게 첫 번째로 다가온 인생의 벽이었습니다. 그 벽은 차마 넘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후 정신을 차리고 공부에 전념하다 보니 저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공부하는 것조차 몸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복을 입고 등교 준비를

하던 중 호흡근이 약해져 119를 타고 병원에 가서 바로 중환자실로 이송되었습니다. 공부조차

힘들어진 제 인생 앞에서, 저는 근육과 관련된 모든 부분이 약해졌습니다. 팔다리와 호흡근을 포함해 혀가 잘 움직이지 않아 씹고 말하기 어려워졌고, 안면 근육이 잘 움직이지 않아 예전처럼 밝게 웃기 힘들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밝게 웃지 못한다는 건 저를 많이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로 큰 벽을 마주한 듯했습니다.

졸업 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사회에서 필요 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일단 건강상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직업이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재택근무로 가능한 직업들을 찾아보았고, 유튜버, 편집자, 통역가,

디자이너 등의 직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편집을 배워 유튜브 편집자로 일하면서 대학 생활비를 모았고, 통역가가 되기 위함은 아니지만

일본어를 공부하며 JLPT 일본어 시험도 응시하면서 진취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고민하고 간절히 생각하다 보면 해결할 방법은 반드시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도 존재합니다. 근육병을 앓고 있는 제가 다시 운동을 할 수 없는 것처럼요. 하지만 저는 운동 대신 다른 길을 찾아냈고, 분명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도 벽을 넘을 방법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현재 저는 블로그와 도서 유튜브를 운영하면서 저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앞을 가로막는 또 다른 벽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지만, 한 번 뛰어넘은 경험이 있기에 다음번에도 분명 극복해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벽을 꼭 넘는 분들이 되길 응원하겠습니다. 저 또한

정체되지 않고 내면과 의식이 발전된 사람이 되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이 글은 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작성했습니다.

인생의 벽에 부딪혀 좌절할 때도 있지만, 그 벽을 뛰어넘을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특히, 엔코이 재단에 이 글을 전하고 싶은 이유는, 저도 엔코이 재단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글을 읽으며 많은 위로와 영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작성한 이 글이 엔코이 재단의

도움으로 많은 분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야기가 되길 바라며, 재단의 가치 있는 일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엔코이 재단은 저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지원을 통해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저 또한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장학생들을 위해

애써 주시는 엔코이 재단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재단에 전하는 말씀>

안녕하세요, 엔코이 재단 관계자 여러분.

저는 처음에 장학 재단 사업을 알아보던 중 친구에게 엔코이 재단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

장학생 지원을 준비하면서 엔코이 재단의 자기소개서에서 요구하는 내면의 소리함과 세전메를 보고 조금 당황했었습니다. 보통 자기소개서는 스펙과 성적을 강조하며 진실보다는 정답에 가까운 번지르르한 글을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엔코이 재단은 정말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적도록 유도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며칠 동안 노트북 앞에서 고민했지만 막상 쉽게 적어나가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 후 엔코이 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필독 사항과 감사 편지 등을 천천히 읽어보았습니다. 기후

위기에 대한 고민, 가족 돌봄 청년의 고민 등등 여러 가지 글을 읽다 보니 정말 심도 깊은 책을 읽은 것처럼 머릿속이 풍성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FAQ를 읽으면서 책을 좋아하는 관리자분의 다정한 말이 뭔가 모르게 저에게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사람이 많은 도서관에서 갑자기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 봐 몰래 눈물을 닦아내며 계속 글을 읽었습니다. '내면의 소리함'을 여러 번 쓰고 지우고, 다른 질문에 대해 답해보는 과정을 통해서 "설령 떨어진다고 해도 나에게 너무 유익한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수능을 포함해 대학에서도 성적과 스펙만으로 인재를 판별하는 것이 지나친 경쟁 구도를

만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빠른 시간 내에 판별하는 방법은 그것 외에는 없다고 생각하며 조금 씁쓸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엔코이 재단은 달랐습니다.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과 글을 통해 진정한 인재를 이끌어내는 훌륭한 재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하고, 울고, 깨닫고 배우면서 진정한 저를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도 꼭 이런 훌륭한 생각과 제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엔코이 장학생 지원을 준비한 기간은

저에게 아주 소중하고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엔코이 재단에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위 영상은 2026년 10월까지 게시될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