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I)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은 우리의 삶 자체다.
앤코이 교육재단 2021-08-29 22:50 1303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은 우리의 삶 자체다. (신청서 3번 질문의 참고)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이 무엇이라 여기시나요?
어떤 분은 자유의 여신상이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보았고, 자연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이라고 말씀하시던 분의 말씀에 고개를 절로 끄덕였던 기억도 납니다.
앤코이는 거기에 덧붙여, 가장 위대한 예술은 바로 '우리의 삶 자체'가 아닐까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술을 꼭 특별한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예술이라는 의미에서 놓고 보면 어쩌면 날마다 자신의 삶과 여정을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해내는 모두가 예술가인 셈이지요.
앤코이는 예술이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근원적 행복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감성을 교류하고 함께 조화될 수 있는 공감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누리는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 만족이나 감각적 쾌락에서 비롯되기보다는, 예술성에서 비롯되지요.
예술은 사랑의 속성, 즉 더 나은 것을 향해 나아가는 조화와 초월, 그리고 창조성을 품고 있습니다.
만약 신이 있다면 그 가장 위대한 속성은 바로 사랑과 창조성이 아니겠는지요.
앤코이는 또한 예술인들의 감수성을 사랑합니다.
인류는 그간 사회나 학교로부터 감수성을 억누르도록 요구 받아 왔지만, 감수성이야말로 사실 무한한 에너지 샘에 연결되는 방법 중 하나이고, 이것이 잠재력 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기 때문입니다.
앤코이는 예술을 표현과 소통, 나눔과 사랑의 통로로 바라봅니다.
예술가가 무언가를 취할 땐 자신의 세계에서 취하고, 이것을 표현해 드러내죠.
이 밖에도 사회적 규범이나 관습적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주체성, 창의적인 영감, 직관과 통찰, 상상력, 판단을 배제한 이해... 이 모든 것이 예술에 녹아있습니다.
이미지출처:freepick
예술 속에서 삶의 진정한 평등은 획일화가 아니라 개성의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삶은 에너지로 충만하며 비교로 인한 열등감을 가질 일이 없습니다.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가죠.
요즘 우리는 어떤가요.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사실 현 시대는 AI나 코로나라는 상황만 놓고 봐도 매우 빠른 변화와 혼돈의 시대이고, 기존의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이 공존하는 시대입니다.
여명이 트이기 직전이 가장 어둡듯이, 새로운 도약은 언제나 혼돈에서 시작됩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다면 혼돈은 문제가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혼돈이 꼭 불행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런 때일수록 거시적인 변화의 흐름과 리듬을 읽고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시대는 과거 서양이 이끌었던 물질문명의 시대에서 이제 동양이 이끌게 될 정신 문명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앤코이는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역설적이게도 예술이 주도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로봇과 인공지능을 통해 가상현실, 메타버스가 현실 속으로 보편화되고, 자동 시스템이 구축되어 노동시간은 줄고 여가시간을 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로봇에게 내어 주게 될 겁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인간은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며 정신적 가치와 영성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과거에는 소외되고 견제를 받았던 예술적 창조력과 상상력, 창의성이 이제는 가치와 행복을 공유하고자 하는 의도와 맞물려 오히려 경쟁력을 갖추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는 수동적이고 기계적으로 암기하고, 논리와 효율성, 획일성만을 고집하는 사람이 아닌, 보편성과 특수성 두 가지의 균형을 갖춘 창의적인 문화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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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공지능으로 예술은 변곡점을 맞이할 겁니다.
이미 인공지능이 미술뿐 아니라 작곡을 하고 소설을 쓰기도 하며 스스로 학습하는 딥러닝으로 인해 전에 없던 창작물을 만들고, 심지어 작품에 대한 평가와 큐레이팅의 영역까지도 대신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인간만의 장점이 있습니다.
바로 정서적 공감능력과 의식을 통한 창조력입니다.
이것을 진정 발휘한다는 것은 진정한 자기와 연결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인류는 쇼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인터넷을 통해 범지구적으로 하나가 되는 보편의식을 향해 나아갈 것이고,
인터넷 강국인 대한민국은 이러한 환경에 이미 최적의 환경을 갖추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예로부터 끼와 신명이 많고 감성이 매우 발달한 민족입니다.
풍물놀이나 탈춤, 판소리 등 춤과 음악에서 삶의 고통과 애환을 풀어냈고 치유했습니다.
현대인들이 원하는 바로 그것이죠.
실제 많은 예술들은 현실의 고통이라는 경험 가운데 자신의 관심사에서 출발해 탄생했습니다.
추함이 그저 고통으로 머물지 않고 자율성을 획득한 인간으로서의 주체성, 전인적 인간을 지향하는 변형을 이뤄냈습니다.
그리고 인생에서의 가장 큰 고통은 불안, 우울, 기억, 외상, 분노 등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대 자신의 인생을 철저히, 그리고 전심으로 살지 않는, 방향성 없는 삶이 고통입니다.
만약 현재 삶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고통은 종종 가치를 향한 길을 안내하기도 하죠.
앤코이는 그대가 삶에서 무엇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지 궁금합니다.
(여기서 가치란 인생을 통해 실현하고 싶은 것을 정의합니다. )
그대가 선택한 가치가 바로 그대가 창조하는 예술에 색깔을 결정할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좋은 예술가는 가장 자기다운 개성을 통한 보편성을 추구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자기다움에서 꽃 피어납니다.
그것은 외부에서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 이미 내재한 것을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한국말에 ‘아름답다’라는 단어가 ‘자기답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모든 존재는 가장 자기다울 때 아름답습니다.
미는 어떤 고정된 형식이 아니라 자유롭게 조화를 가능하게 하는 역동적인 힘입니다.
한 세기가 넘게 세상에 이어져온 논쟁은 바로 예술이 무엇을 위한 것이냐는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술과 창의성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우리 기존의 이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술가들의 접근은 흔히 두 가지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무언가를 창조하고, 그것이 분리된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매우 흔한 일입니다. 자신의 작업물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면 특별하다고 느끼고, 그것이 창의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 자신의 마음만으로는 충분히 창의적일 수 없다고 생각하여 더 높은 영감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개방하는 예술가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자신을 분리된 존재로 보는 것에 갇혀 있을 때, 그 영감은 종종 감정 영역, 멘탈 영역 또는 몇몇 경우에는 낮은 정체성 영역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재단은 우리가 그동안 많이 놓쳐왔던 것, 삶에는 더 높은 창조성의 단계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창의성의 더 높은 형태로서, 자신이 영적 존재라는 것을 점점 더 의식화할 수 있는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겸손히 연결감 회복을 구하는 것을 비롯해, 더 나은 창조성과 아이디어를 요청하는데 열려 있을 수 있습니다.
더 높은 단계들과 과정을 의식하게 될 수록 점점 더 중립적이 될 것입니다. 즉, 더 잘 인식하게 되고 직관력이 향상될 수록, 외적인 마음의 내용물들이 창의성을 제한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 지점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라오면서 인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특정 문화적 인식필터를 오랫동안 경험해 왔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자랐기 때문에, 그동안에는 그 틀 안에서 창의력을 발휘해 왔지만, 이제 이것이 제한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시점이 올 것입니다. 그 때 자신을 돌아보고 집단의식 또는 문화적 프로그래밍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제약들에서 벗어나 점점 더 중립적이 될 수 있습니다. 창의성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편견이 점점 줄어들고 한계에 대한 감각이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여러분이 점점 더 중립적이 될수록, 여러분은 점점 더 열린 문이 되고, 이것은 훨씬 더 많은 것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식적으로 자신을 열어 연결감을 획득한다면, 영적 영역에 요청한 빛을 세상에 가져올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 실용적인 발명품이나 음악, 이미지, 또는 비건설적인 상황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더 나은 삶으로 개선할 수 있을 지의 관점까지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의식을 통한 진정한 창조력'이라 할 수 있으며, 앤코이는 바로 이 점이 인간으로서 동물과 구별되는 지점이라 여깁니다.
동물의 경우에는 같은 종 안에서 행동이 통일되어 있죠.
그러나 사람은, 일부 무지한 사람들이 애를 쓰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절대로 그렇게 창조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방법이 다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의 글을 빠짐없이 읽습니다. 글로서 나타나는 여러분의 말투며, 경험에 담긴 느낌과 생각들이 모두 다 다릅니다.
여러분 모두가 스스로를 영적 존재로 자각하든 안하든, 각자 자기만의 고유한 성장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의미를 가진 경험들이 있고, 여기서 유의미한 것은 그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촛불과 같이, 자신의 열정을 태워 누군가에 빛을 주려 할 때,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에 연결될 때 우리의 창조성은 깨어납니다.
그대의 삶, 그대의 향기, 경험과 표현을 세상에 보여 주고 나눠주세요.
앤코이는 자신의 고유성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인재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미지출처: 네이버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