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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II) 갈등 상황에서 중용의 입장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기(신청서 1-①의 참고)

앤코이 교육재단 2022-08-19 17:32 조회수 아이콘 602

갈등 상황에서 중용의 입장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기(신청서 1-의 참고)


우리는 솔직하게 자기표현하는 것을 너무나 주저합니다. 

서구인들이 보여주는 냉정하고 직설적인 방식도 반드시 좋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동양권에서는 그것을 버릇없고 예의 없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체면을 지키길 원하고 솔직하게 자기표현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문화는 사회의 발전에 매우 큰 장애물인데,

상호소통 방식을 제한하기 때문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드러나지 못하고 억압되거나 방치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기분 나쁘게 했을 때, 반드시 그 사람에게 무엇을 잘못했고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전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관련해서 그렇게 하도록 부담을 느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소통방식이 있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면서 내가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를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비난이나 판단, 당연시, 비교, 합리화 혹은 강요 모드로 들어가는 대신, 그 사람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표현하고 그 사람이 이와 관련해서 어떻게 할지 결정하도록 허용해 주는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


자각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감정이 느껴지면, 평상시 해오던 자동적 생각이 돌아가면서 자기 감정의 원인을 타인에게서 찾기 쉽습니다. 

흔히들 남 탓이라고 하죠.

실은 상대방은 감정의 원인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일 뿐입니다.



감정에 따른 핵심욕구


대화를 정말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감정의 원인을 자기 욕구에서 찾으며, 생각이 아닌, 자신 안에 더 깊은 욕구에 머무를 수 있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감정 기저에는 욕구가 있고, 이에 따라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상태가 있습니다.

우리가 대화하고 행동하는 결정적 이유는 사실 핵심욕구와 가치 때문이고, 그러므로 갈등의 순간에 느끼는 '감정에 따른 핵심욕구'를 들여다 보려는 시도는 대화하면서 많은 갈등을 예방하고 평화롭게 해결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관점에 대한 이해는 합의점을 찾기 쉽지 않은 경우가 더 많지만, 서로에 대한 욕구는 이해가 가능한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테면 "내가 무시 당했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어도, "제가 존중이 좀 필요해요."라는 말은 동의할 수 있습니다.


종종 둘 사이의 오묘한 차이는 '피해의식'입니다.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찾고 표현하려면, 자신이 피해자라는 생각에서 잠깐 내려와야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피해자라는 생각이 강할 수록, 자신의 욕구를 찾는 것은 더 어려워집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진정 원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훈련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밤새 과제를 하느라 너무나 피곤한 상황에서, 룸메이트로부터 오늘 저녁 자신의 손님이 오니, 당장 설겆이와 분리수거, 청소 등을 해줄 것을 부탁받는 상황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룸메이트는 중요한 약속이 있어 급히 다녀올 곳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럴 때 "넌 맨날 이러더라. 내가 호군줄 아니?!" 라는 표현보다 더 좋은 방법은 

"내가 밤을 샜더니 지금 잠이 너무 쏟아져서 그러거든. 내 필요도 포함하면서 너를 돕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네. 혹시 네가 만족스러울 만한 방법을 좀 안다면 말해 줄래?" 라며 마음의 의도를 전달하는 연결의 대화방식이 존재합니다.


이해,수용 + "그리고~"


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세련되게 말을 잘하거나, 남을 조종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어색하게 굳이 그렇게 말해야 하나요" 물으신다면, 우리가 미리 알아둬야 할 것은, 우리가 살면서 타인의 생각을 지적할 때, 많은 경우 상대는 자신이 틀렸다 지적하는 것으로 들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스스로를 상황이나 생각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주로 직면하고 있는 갈등 상황의 대화 속에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말이 경청되고 있다는 느낌과 분위기는 중요합니다.

'상대의 모든 비난은 왜곡된 방식의 부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아두는 것은 전문가들이 말하는 대화를 잘할 수 있는 기술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느낌에 공감하도록 애쓰는 것은 유용한 방법입니다.

나도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말이나 행동을 했다면 그렇게 느꼈을 것이라고 상대의 말을 잘 들었고 그가 왜 흥분하는지 이해했음을 최대한 편안하게 인정해 보세요.


이 때는 자신 내면의 에고(Ego)를 인식(awearness)하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됩니다.

그것이 문제인 동시에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언행에 '싫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은, 자신 안에도 그런 모습이 있다는 증거임을 알아차리세요.


삶을 경험하는 방식을 전환하기 위한 이해 (2): 에고


에고는 흔히 자신을 먼저 앞세우고 상대의 관점을 이해할 줄 모르기에, 자기 제어 통제력을 얻는 것은 상황을 치유시키는 첫 걸음입니다.


상대방의 말 중에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더 설명해 달라고 하세요.

혹시 마음 속에 상대방의 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차단하는 것이 올라오나요?

그렇다면 다시 에고가 운전대를 잡은 것이니, 일단 다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도록 해봅시다. 

이 과정을 통해 상대방 에고의 방어도 느슨해집니다.


이제 차분하고 천천히, 내가 그 상황에서 느꼈던 바를 마찬가지로 분명히 설명하세요.

나도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서 힘들다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이상을 요구 받는 것에 대해 속상하다고 말해보는 겁니다. 


우리는 그럴 만한 이유를 표현할 권리를 갖고 있어요.

자신도 인간으로서 언제나 옳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때때로 에고에 대한 통제력을 나타내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에고는 항상 승자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죠.


이것이 그가 가진 고유한 현실, 그 사람의 고유한 개성을 받아들여야 하는 타이밍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신념은 사람마다 고유하게 지닌 삶의 흔적이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대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마음입니다.


"그렇게 느낄 일이 아니다."라는 말 대신, " 그 말이 사실인가요?" 물어보고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온다면 인정해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서로 다른 논의가 이어져야 합니다.


에고는 자신이 옳다 주장하고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이 명백히 틀렸다는 걸 찾으려 애를 쓰고요.


하지만 이 때, 상대방과 나의 에고에 동일시 되지 말고,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고 한 발 물러서서, 그 의식의 초점을 긍정적 결과에 맞추어 보거나, 마음 속으로 자신이 사랑의 에너지장에 둘러싸여 있음을 상상해 보는 것은 간단하지만 진실로 효과가 있습니다.


누가 옳고 그른가의 게임에서 벗어나세요. 

항상 옳고 그른 것으로 증명되는 결말로 이끌고 가고 싶어하는 이들의 말을 가만히 관찰해보면, 거기에 어떤 방식이 보일 겁니다.

실제로는 일관성이 없고,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지도 않고, 상황에 대해 매우 선별적인 관점에 기초한다는 것을요.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사실 정답이 아닙니다.

그들은 많은 경우 인정받길 원합니다.


상황 속에서 그들에게 반대 의견을 낼 필요가 있을 때에는 이렇게 한번 말해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아 그대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그리고, 제 입장을 한번 말씀드려 본다면...... ."

"그랬었다는 말이군요. 그리고, 당신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느꼈습니다...... ."

"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그리고 제가 거기에다 조금만 덧붙이자면...... ."


이것은 '공감'이지, 자신의 의견을 상대편에 '동조'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공감과 수용은 많은 경우, 상대의 맺힌 감정을 풀고 해결로 나아가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한 가지 미묘하지만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에고는 인간으로서 이상적인 행위가 항상 점잖고 부드럽게 말하고 친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종 붓다나 예수그리스도와 같은 영적 지도자를 언급하면서 그것을 정당화합니다.

하지만, 경전을 통해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알 수 있듯,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꾸짖었고 환전상의 좌판을 뒤엎었으며, 현실에서 고타마 붓다 또한 항상 부드럽게 말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결코 도전하지 않고 현상 유지만을 바라는 방식으로 정의하고 싶어하는 '이원론적인 친절'이 아닌, 진정한 본보기를 통한 '신성한 친절'을 인식할 수 있길 바랍니다.


만약, 완강한 저항을 가진 눈먼 에고를 마주하고 있다면, 그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웃으며 패배를 시인하고 자리를 뜨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종종, 자신의 너무나 깊은 심리적 상처 때문에 그들의 모든 관심과 의지가 자신의 상처를 보호하는데 꽁꽁 묶여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한 가지 유념해둬야 할 것은, 상대 감정의 책임은 상대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정신의학자 모건 스콧 펙은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욕구 충족 여부에 대한 책임이 자기에게 있음을 분명히 인식한다고 언급하면서 이것이 성숙한 사람과 미성숙한 사람을 구별해준다고 하였습니다.

내 감정에 대한 책임이 내 욕구에 있듯이, 상대의 감정은 상대의 욕구 때문이며, 그 책임 또한 상대에게 있고, 상대의 감정을 내가 책임져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상대의 감정을 배려할 수는 있겠지만, 나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책임져 줄 사람은 오직 나뿐입니다.


이렇게 하면 시간이 걸리든 그렇지 않든 간에 대개 많은 이들은 이전에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이나 어떤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한 행동이 다른 이들 입장에서 어떻게 체험되는지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러한 방식이 새로운 상호 소통 방식을 열어 주어서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더 잘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긍정적으로 작용될 때,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더욱더 자유로워지는 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좀 더 열린 태도로 문제를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중도를 찾기 바랍니다.



이미지 출처: 구글이미지 




마지막으로, 갈등 관리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모의 연습을 하나 제안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갈등 관리 능력을 개선시키는 연습>


우리는 상상을 통해서도 바람직한 행동을 배우고,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상상 속의 연습은 두뇌 속 뉴런을 새롭게 연결시킵니다. 상상을 반복할 수록 뉴런 연결은 더 강해지며, 오래된 습관마저도 넘어서는 힘이 있습니다.


먼저 갈등상황을 하나 떠올려 보세요. 생생하게 떠올려 보세요. 방금 전 실제 갈등상황이 있었고, 현재 고요한 장소에 홀로 있다면 이 연습을 하기에 더더욱 좋겠죠.


1. 갈등의 과정을 마치 연극의 막처럼 조각조각으로 나눠보세요.

2. 갈등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한번 훑어나가되, 상상 속에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태도와 감정을 변화시켜 보세요. 상상 속에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말과 행동을 허용해 보세요.

3. 끝에서 두 번째 장면을 훑으면서 2의 과정을 반복해보세요. 이 부분의 행동과 말을 변화시켜 보니 마지막 장면에도 어떤 영향을 미치던가요? 마지막 장면을 더 바꾸고 싶다면 그렇게 하세요.

4. 이제 끝에서 세 번째 장면으로 돌아가 위의 과정을 반복해 보고, 이어서 상황의 첫 장면에 이르기까지 해보세요.

5.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갈등이 시작되고 있다는 최초의 낌새가 언제 나타났는가? (그 부분을 머릿속 필름으로 다시 돌려 봅니다.)

그 낌새를 어디에서 감지했는가?

이 연습 과정을 거치고 난 뒤, 만약 같은 상황을 다시 겪게 된다면, 어떻게 갈등을 예방할 수 있을까?

갈등이 그다지 요란하게 치닫지 않고도 상황이 유쾌하게 종료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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