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V) 에고의 거짓말 알아차리기- 신청서 1-①의 참고
앤코이 교육재단 2022-09-26 10:48 652
머릿속 이야기꾼(에고)의 거짓말 (신청서 1-①의 참고)
추후 말할 기회가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에고'는 그간 우리가 학교에서 익숙히 배워왔던 그 에고랑은 개념이 좀 다릅니다.
일단 사고, 생각이라 불러도 좋습니다.
사람들 머릿속에 이 '목소리'는 모든 거짓을 표현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처음엔 그것이 자신의 목소리인 줄 착각하지만 그것이 진정 그대의 목소리라면, 그것을 듣고 있는 그대는 누구란 말입니까?
이 목소리는 그대 자신과 주변에 대한 '견해'와 '판단'이고, 그대가 살아가는 동안 '학습'해왔던 것들일 뿐입니다.
그 목소리가 들려 주는 거짓말로 인해 우리는 더 많이 미워할 수도 있고 더 많이 상처 주며, 거짓을 방어하고 죄를 캐묻는 데 열을 올립니다.
바로 우리가 그것을 '자각'하기 전 까지는 말이죠.
그대는 진정 그대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누가 우리 대신 선택이란 걸 하고 있습니까.
그 목소린 언제부터 있었을까요?
우리가 지식을, 언어와 다양한 관점을 얻은 뒤부터, 그리고 내면에서 모든 비판과 거짓들을 경험하면서부터 우리 안에는 분리의식이 생겨났습니다.
머릿속에 선악과 지식의 나무가 자라나며, 그 거짓말쟁이가 우리 삶의 주체성을 앗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원래 하인으로 임명 받았지만, 주인(master)으로서의 우리의 자릴 꿰차고, 분노와 슬픔, 증오, 질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거짓말쟁이죠.
우리 머릿속에 그 목소리 말입니다.
자신의 에고를 포함해, 모든 사람의 이야기는 그들 자신의 관점일 뿐
(가장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부분이니, 이 챕터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입니다. ^^)
우리는 내면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각자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갑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진리는 아니기에,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야 할 필요가 없죠.
이것을 진정 이해한다면 그대는 더 이상 그대 스스로 믿는 걸 옹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옳고 다른 사람을 틀리게 만드는 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말이죠.
사람은 누구나 예술가이고 이야기꾼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세요.
그들이 무엇을 믿든 그건 그들의 관점입니다.
실은 진정한 그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답니다.
그것을 믿지 않는 한 그것은 점점 더 작아지고, 사이사이 '침묵과 고요'가 생기며 그대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것입니다.
제 아무리 야생마라 하더라도, 말은 일단 타고 나면 그것을 길들일 수 있습니다.
일단 길들이고 나면 그 사고, 생각은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으로 가기 위한 훌륭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언제부터 우리는 거짓말들을 믿게 되었을까
우리는 누구나 어른들이나 주변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대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이고 그대가 지금 믿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위해서 그대 과거의 기억을 찾아 보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가 불완전하다는 그 거짓말을 알아차려 봅시다.
어린 시절 마침내 언어를 완전히 습득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그대가 누구인지를 말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대가 그대를 알아가는 과정은 그렇게 ‘나’를 둘러싼 그 이야기꾼들의 의견을 듣는 것으로 시작되었죠.
육체로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그대 자신이었음에도 그대보다는 다른 사람의 말을 더 믿었던 것입니다.
학교에 들어가자 이번엔 선생님과 친구들이 그대가 누구인지 말해 주었습니다.
그대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 지까지 알려주었고 우리는 그 말에 동의했습니다.
“여러분~ 훌륭하고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해야 해요.”
“착한 아이가 되려면 이렇게 해야지."
특정하게 정해준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착한 아이가 될 수 없었습니다.
미묘한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듣는 그 모든 말들의 이면에 다음과 같은 뜻에 동의한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당시엔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던 거죠.
‘넌 아직 훌륭하지 않아. 부족해. 그건 어떤 문제가 있다는 뜻이지.’
그랬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그 말은 당장 지금의 그대가 있는 그대로 충분하지 않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시 가르치는 사람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이것은, 그대의 잠재의식에 프로그램밍 되었고 그 때부터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처럼, ‘완전함’의 이미지를 내면 밖에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진정한 나 자신이 되는 길을 놓친 순간, 그리고 그대가 아닌 다른 모습을 연기하기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대에 대한 가짜 이미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내면으로부터 멀어졌고, 거짓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그대 주변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쳤고 우리는 가족을 만족시키고, 선생님을 만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그대의 외모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고 우리는 더 많은 수치심 혹은 비교의식을 배워왔습니다.
사람들은 승자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들은 완벽해지고자 애쓰고, 중요한 사람이 되고자 애쓰고, 자기 자신이 아닌 그 무엇이 되고자 애를 씁니다.
우리도 거기에 동참하며 우리 자신 스스로 자신의 성에 차지 않는다고,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대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A학점을 받고, 최고가 되려 노력합니다.
처음엔 주위의 인정을 받기 위해,
나중엔 스스로 좋게 느끼기 위해서.
그런 식으로 우리는 서서히 진실하지 않고, ‘순수함’과 ‘온전함’으로부터 멀어져 버립니다.
인간은 오로지 '진정한 자신'일 수 있을 뿐
모든 부모님들께서 그러하신 것은 아니지만, 자녀에게 무엇이 이로운가를 의사 결정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경제적 혹은 사회지위상 만족스러울 지를 보다 중요시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상대하는 자녀들은 점점 더, 사람들이 바라는 모습을 연기함으로써 그들을 만족시키려 합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의 의견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내 모습이 어떤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누군가의 격려가 필요했고 누군가 ‘넌 정말 훌륭하구나.’ 하고 말해주기를 바랍니다.
외부로부터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스스로를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기 시작합니다.
‘아 저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낫고 이 사람들은 나보다 못해.’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지만, 그 반대의 경우엔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렇게 오랜 연습을 거친 끝에, 우리는 밖에서 주입된 그런 이미지들에 의해 만들어진 모습을 진짜라고 믿고, 결국 이 사회에서 인정 받고자 노력하지만 여전히 무언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훌륭하지 않고 무언가 부족하다는 사실에 동의했던 바로 그 순간부터 그 거짓말을 믿고 연기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지’ 라는 그 말을 들으며, 실제의 우리 자신이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을 받아들인 그 순간부터 우리 삶의 고통이 시작됩니다.
사람들의 이해와 인정, 그리고 사랑을 원했지만 우리가 들었던 대부분의 말들이 단지 그들의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해서 그 ‘거짓 완전함’, 즉 ‘불가능한 완벽’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 완벽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몸부림치다 결국 그것을 포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렇게 우리 중 누군가는 스스로가 루저이며 이번 생은 글렀다고 받아들이게 되고, 또 어떤 이는 외부의 모든 것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닌 것이 된다는 거, 우리가 아닌 것을 연기한다는 것, 그것은 원래부터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죠.
그런 삶은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하고 결국 인생 주기의 시기상 차이일 뿐, 질 것이 뻔한 게임입니다.
그렇기에 특별히 누군가를 부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은 절대 자신이 아닌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오로지 그 자신일 수 있을 뿐입니다.
마음은 항상 열어두고, 에고가 아닌, 가슴 중심의 고요와 직관에 귀를 기울이세요.
귀기울여 듣고 나서, 그 말이 가진 진동수를 느껴보는 습관을 키우세요.
모든 사람의 말을 믿지는 말되, 비판하지 않고 듣는 법은 배우세요.
그것이 그대를 고양시키는 주파수일 땐, 기회와 성장의 영감이 되는 순간이 될 것이고, 그대를 두렵게 하고 낙담시키는 주파수일 땐, 그대가 그것을 믿지 않음으로써, 이전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듣는 법을 키워나갈 때, 자신과 대화하는 능력 역시 향상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
만약 누군가 와서 그대를 비판하고 지적해 감정적으로 반응이 일어난다면 가장 먼저 취해야 할 조취는 그대가 상대와 자신의 '에고'를 인식하고 그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서 '진정한 자신'으로 머무는 것입니다.
호흡을 응시하며, 상대의 말을 들어 보세요.
그 안에 순수와 영감과 같은 더 나은 요소들이 있는지 찾아보고 그러한 것들이 전혀 발견할 수 없다면 모든 것을 그대 자신과 관련시켜 받아들이지는 마세요.
발전 의지와 감수성이 예민한 분들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하고, 흔히 상대를 비판하려 하기보다는 자신을 되돌아 보려는 모멘텀이 강합니다.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는 분들이죠.
하지만 그렇기에 상대의 비판에 심리적으로 취약해지는 부분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대가 상대의 말에 상처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그대가 그것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에 동의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그의 말을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만약 상대의 말이 옳다고 느껴진다면 바꾸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감정적 반응은 필요치 않습니다.
집단의식 안에는 반응 패턴에 대한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진 분리된 자아가 있습니다.
이 분리된 자아는 누군가 여러분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자존심이나 어떤 치부를 건드릴 때,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행동이 그것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건 그냥 무시할 수 없다고, 반응해야 한다고 말이죠.
상대 또한 여러분이 응수를 하거나 기분이 나빠지길 원하며, 그러한 반응을 기대합니다. 종종 이것이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잠재의식적으로 여러분을 부정적인 패턴으로 몰아넣고 어떤 반복적인 패턴으로 끌어당겨, 즉 휘말리게 하여 여러분의 주의력, 즉 에너지를 빼앗아 가려는 목적밖에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은 거 같습니다.
아주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상대의 부정성에 관여하지 않을 자신의 권리, 더 이상 반응하지 않을 권리를 인식했습니다.
이것은 자신과 상대에 대해 고정된 심상을 가지지 않는 '진정한 자비'이기도 합니다.
반응과 자비에 통달한 깨달은 스승들은 말합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일은,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다가와서 비난을 할 때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원하는 반응을 얻지 못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냥 지켜보는 일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부정적인 패턴 안에 끌어 넣으려고 다가왔는데 여러분이 기대한 방식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상대는 아마도 자신의 반응을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미친 놈이라고 욕을 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는 이 예상치 못한 반응에 깜짝 놀라며 그로 인해 자신을 살펴보고 돌아봄으로써 자유로워질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이에 반면, 상대의 기대대로 반응하는 것은, 나와 상대의 반응 패턴을 또 한번 반복해 분리된 자아를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자유로워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이 그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은 자신들 이야기에 등장하는 조연, 그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뿐, 반드시 그대 자신과 연관 지어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대가 살고 있는 것과는 제각기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죠.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꿈과 이미지 안에 살아가기 때문에, 그 이미지는 사실 그대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가족이라 할지라도,) 실상 그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데, 상대가 그대에 대해 뭔가 더 잘 알고 있다고 받아들여 버린다면 그들의 세계에, 그대의 세계를 꿰어 맞추려는 어긋난 일을 시작해 버리는 셈입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그대를 대놓고 모욕할지라도, 그것은 실제 당신과 상관없는 것들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 의견은 모두 그들의 마음 속에 지니고 있는 가짜 이야기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관점은 그들이 길들여지는 동안 만들어진 프로그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을 비난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심리를 밖으로 표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진술을 숙고해 보세요.
상대는 그대에게 독을 뿜으려 하고 있고, 믿지 않는다면 그 독은 그대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수많은 인간관계의 갈등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진정으로 삶에 적용한다면 이제 어느 누구도 그대를 상처줄 수 없으며, 그대는 비웃음을 사거나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활짝 열려 온 세상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가장 열렬했던 팬심은 곧이어 가장 맹렬한 비난으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많은 연예인들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변에 서로 가장 사랑했던 연인들을 한번 지켜 보세요.
가장 껄끄러운 남이 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상대의 찬사와 칭찬마저도,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누군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든 그것은 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문제이지 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상대는 나를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낸 이야기 속의 자신을 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연인이 와서 "그대 말이 날 아프게 해요." 말한다면 상대를 아프게 한 것은 반드시 그대가 했던 말 때문이 아니라,
그대가 건드릴 만한 상처를 상대가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과거에서 온 마음의 사슬, 그 말이 모욕적인 말이라고 과거에 배웠던 것입니다.
즉, 그대가 화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기보다 트리거(trigger)였고, 상대방 과거의 화들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말의 죄를 짓지 말라. (험담하지 말기)
누구나 알듯, 그대의 말은 가장 아름다운 꿈을 만들 수도 있지만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씨앗이 계속 뿌려지는 비옥한 땅과 같으므로, 말로 인해 우리에게 심어진 하나의 공포와 의혹이
인생에 끝없는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마법사입니다.
사람은 늘상 우리의 의견을 말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마법을 겁니다.
그대가 "너 고작 이것밖에 못하니!" 라고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상대는 정말 그러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남을 비난하는 것 또한 자신에게 해가 된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말의 죄 중 가장 좋지 않은 것은 험담.
여기서 죄란 그대가 그대 자신에게 해로운 일을 저지르는 것을 뜻합니다.
험담은 마치 인간이라는 컴퓨터에 바이러스와 같습니다.
친구가 그대가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 대해 험담할 때, 그대는 친구가 어떤 동기로 그런 말들을 하는지 잘 모릅니다.
친구는 화가 났을 수도 있고, 두려움과 편견으로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듣는 순간 그대는 이미 그 판단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사람을 보면 친구의 시선으로,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고 이것은 그대 감정에 독으로 전파됩니다.
누군가는 나아가, 잘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에 대한 험담을 또 다른 이에게 퍼뜨리기도 합니다.
그 사람이 왠지 싫어지고, 이제는 모든 탓을 그 사람에게도 돌리기까지 하고 말입니다.
사소한 컴퓨터 바이러스 하나가 모든 걸 망치듯이, 그릇된 말 한마디가 모든 의사소통을 파괴하고 그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심지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조차 전염시킵니다.
사람은 때로 자신의 관점이 옳다 스스로 느끼기 위해 때로는 그 모든 독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립니다.
자신과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는 말과 감정, 믿음은 모두 죄와 같습니다.
그대의 의견은 그대의 관점일 뿐, 그것이 반드시 진실하다 할 수 없으며 그대의 믿음과 자아, 그리고 꿈(환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심판과 비난은 모두 결국 자신에게 해로울 뿐입니다.
만약 그대가 말의 죄를 짓지 않는다면 그대의 비옥한 토양에는 부정적 생각이 침범할 수 없습니다.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고통에서 벗어나길 원한다면 이것을 반드시 지키셔야 할 겁니다.
말을 사용할 때, 오로지 사랑을 나누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십시오.
먼저 그대 자신에게 다정하게 말을 거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그리고 그 말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해주십시오.
추측하지 말라
추측은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것은 가장 중요한 약속입니다.
사람들은 거의 모든 경우에 추측을 하고 있는데, 뭔가를 추측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진실이라 믿게 됩니다.
추측은 다른 사람의 행동과 말을 자신과 관련지어 생각하게 하고, 그들을 비난하고 말로 죄를 짓게 합니다.
추측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커다란 사건으로 오해하고 확대하게 합니다.
우리가 삶의 여정에서 겪는 대부분의 슬픔과 격정의 범랑은 대다수가 자기 마음대로 추측하고 자신과 관련해서 해석하는 데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상대에게 명확하게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는 대신, 우리는 혼자서 넘겨짚고 추측이 옳다 믿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추측이 옳다 주장하며 상대를 몰아 부칩니다.
왕따와 일진의 많은 경우, 자신이 알려지길 꺼려하는 어떤 사실에 대해 자신이 지목한 그 친구가 그것을 이미 보거나 알고 있는 거 같았고, 그것이 다른 아이들에게 알려지는 게 두려워서였다고 상담에서 고백하는 친구들이 꽤 있습니다.
마지막 챕터는 가장 중요한 만큼 '이번엔 연인들의 대화'로 들어가서 좀 더 알아 보기로 합시다.
다음 게시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