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I) 그대에게 주어진 강점은 무엇인가요? (신청서 3번 질문의 참고)
앤코이 교육재단 2022-10-02 09:07 1127
그대에게 주어진 강점은 무엇인가요? (신청서 3번 질문의 참고)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 SDSN)이 최근 공개한 '2022 세계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행복지수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으로 나타났습니다.
전 세계 146개국 중에서는 59위였구요.
외국에서 바라볼 때,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많은 성취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마음이 편안하고 만족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사나요." 라는 질문에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먹고 살아야죠." 라고 대답하시는 분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런 식으로 좋은 성적이나 학교, 돈, 승진 등 외부 보상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을 '외재적 동기'(extrinsic motivation)라고 합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경쟁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서로 견제하며 협력을 멀리하게 되고, 비교 의식으로 인한 열등감을 안겨주기에, 원래 그 성취가 주었던 의미와 가치가 결코 오래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일등은 한 사람이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불만족스러울 수 밖에 없고, 일등조차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불안이 있습니다.
서로 비슷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착각
노블희망장학금 신청서에 쓴 학생들의 글 내용을 보면 "다양성과 개인의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에서조차, 우선은 틀에 맞춰져야 하고, 다양성 존중은 그 다음인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한국은 모든 사람들이 일단 어떠한 기준에 맞게 부합되어야 하고, 그런 이후에 다양성을 표현해야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나라"라고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네,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어떠한 기준을 규정하고 그 인식에 부합하는 것을 소위 '정상' 혹은 '우월'의 요소로 치부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뭔가 부족하거나 이상한 사람, 혹은 '사회적 낙인'으로 여기는 관습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딛고 있는 지반(사고)이 그리 단단하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국에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서로 비슷해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그로 인해 한 열로 줄을 세워 잣대를 들이대곤 하는 모양새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등수를 매기는 사회가 되어 버린 거죠.
사람을 등급에 따라 나누고 성적이나 외모순으로 가치를 나눠버리는 줄세우기식 교육은 사실 절대로 정상적인 양육 방식이 아님에도, 안타깝지만 어릴 때부터 대다수가 이미 그 틀에 끼워 맞추어져 버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훨씬 큰 에너지를 제공하는 원동력은 사실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입니다.
그것은 행위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이나 뿌듯함, 기여, 사랑, 애정, 재미, 기쁨, 건강한 관계, 가치와 같은 보상입니다.
하버드대학의 국립과학위원회 연구에서는 동기부여 자체가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글루타메이트, 그리고 자연발생적 오피오이드 같은 화학물질을 기쁨이나 보상의 감각, 기억, 감정 등과 연결된 뇌의 다른 부위로 내보낸 일종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합니다.
외재적 동기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내재적 동기를 살피는 것이 꼭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가진 자율성(자신의 의지를 이용하는 힘)과 능력(기술이나 업무 숙달 정도), 관련성(타인과의 긴밀한 관계 및 소속감)으로 기인한 심리적 욕구가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선천적 욕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령 어떤 이에게는 원활한 교통 흐름을 위하여 교통 규칙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운전면허 정지나 벌금이라는 처벌을 피하기 위해 교통 규칙을 따르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잠재력을 발현하는 기회로 회사에 출근을 하지만, 어떤 이에게 출근이란 수면 시간이 부족해도 월급을 받기 위해 꾸역꾸역 나가야 하는 고된 노동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리가 삶에서 수행해야 하는 활동들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마련이고, 같은 활동이지만 각 사람마다 어떤 동기에 의한 것인지가 다 다릅니다.
앤코이가 신청서에서 경험과 성찰을 보는 까닭
앤코이는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는 좀 더 내재적 동기가 기반이 되어 돈을 벌고 성공하도록 선택하고, 가르치는 문화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성적이나 외모가 아닌, 존재 자체로 개개인이 가진 가치와 강점을 인식 시켜주고, 그 주어진 강점으로 세상과 협력하며, 기여할 바를 찾아 가치를 실현하며 살아가도록 말입니다.
'오프라 윈프리쇼' 프로그램이나 'TED 강연'에서 이미 들어보셨겠지만, 이것이 결국 보수까지도 많이 받고 성공하는 방식임을 우리가 전혀 모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장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삶, 타인의 잣대가 아닌 나의 의미와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삶, 앤코이가 지향하는 방향입니다.
앤코이가 지원자의 성찰과 경험을 노블 내면의 소리함에서 보는 이유인데, 삶의 의미를 찾으려면, 그리고 자신이 실현하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 알아야 합니다.
경험은 그것 자체로 많이 보고, 듣고, 배우며 나를 알아가는 방법이자, 자신을 알도록 도와줄 수 있는 외부적인 훌륭한 도구입니다.
내부적인 도구는 '성찰'입니다.
그저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거나 끌려 다니지 않는, 보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자신에게 삶이 던져준 과제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점검해 보고,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해 보는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또한, 자신의 강점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적어보고 그것에 집중하다 보면 자신이 보다 괜찮은 사람이라 느껴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강점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세상에 무엇을 기여할 것인지'를 찾다 보면 마침내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되죠.
그것을 통해 마침내 직업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돈을 버는 방식, 그리고 보상을 추구하는 방식에 대한 선택의 패러다임을 바꿔볼 필요도 있는 것이죠.
감사하게도, 많은 신청자분들께서 앞으로 다른 이들과 함께 많이 나누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들을 신청서에 적어주고 계주십니다.
하지만 위의 2가지(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경험'과 '성찰')와 순수한 동기가 동반되지 않은 채,
그저 '나눔'부터 하려는 것은 자칫 단순한 희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잠재되 있습니다.
나눔은 분명 그 자체로 삶에 대한 유용한 배움과 경험이 되기도 하지만, 지속적인 성찰과 순수한 동기 없이는, 그것은 종종 남보다 내가 더 낫다는 미묘한 우월 의식이나, 불현듯 찾아온 삶의 불확실성에 대해 당사자에게 자칫 이해할 수 없는 커다란 혼란을 불러오기도 하니까요.
내재적 동기를 스스로 연구하다 보면, 자신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행동을 할 때, 자신의 마음가짐이 "장학금을 꼭 타야 해, 공부를 해야 돼, 꼭 이기고 말겠어"와 같이 "그것을 꼭 해야 돼" 혹은 "하고 말겠어"라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들은 부담을 주고 필요하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에고'에게 에너지를 주기에, 내면의 소리와 자유로운 흐름을 방해합니다.
에너지와 직관이 가장 잘 흐를 수 있게 하는 동기는 "이 일을 통해 내가 어떤 것을 배울 수 있을까",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긍정적으로 변화할 기회로 만드는 것이 좋겠어", "더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해주는 것이 좋아" 등과 같이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을 인식하는 감사와 긍정적인 표현들입니다.
이제부터는 "해야 돼"라는 표현을 "하는 것이 좋겠어"로 바꿔 말해봅시다.
실패가 두려우신가요?
보다 주체적인 삶을 원하는 이들에게 그들의 강점에 집중해 직업을 선택해 볼 것을 권하면, 막상 많은 이들은 불안해 합니다.
학교에서는 보통 실수를 고치고 약점을 없애는 방법을 가르치기 때문에 우리는 어릴 때부터 거기에 익숙합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를 주저 없이 지적하는 습관도 그런 교육에서 오는 것이며, 우리는 실수나 실패에 대한 많은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에고가 내리는 모든 결정이 실수이고(결정을 내리지 않겠다는 결정을 포함해서), 우리가 언제든 에고와의 동일시를 벗어날 수 있다는 더 깊은 이해에서 사실 인생에는 진정한 실패도, 실수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직 실험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한 다리로만 서 있으면 쉽게 피로해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강점을 강조함과 동시에 자신의 약점을 다루어 약점마저도 강점으로 승화함으로써 단단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한다면, 작게 나마 계속 시도해 보는 것 자체로 의미 있는 일입니다.
아무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삶보다, 실패하거나 실수한다 하더라도, 다시 작게 도전하다 보면 그것이 쌓여, 좌절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힘을 만드니까요.
만약 '모든 것이 나를 깨달아 가는 선물임'을 인식할 수 있다면... 어떤가요.
앤코이는 여러분들께서 그것이 '마치 예술가가 자기 (인생이라는) 작품에서 어떤 것이 잘 되었고 잘못되었는지 발견할 기회'라고 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지금 볼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궁극적인 실패를 했다고 갇혀 버리게 된다면 그것이 실수이지요. 다시 말해 '잘못된 선택'이란 없습니다.
결과를 살펴보고, 그 선택을 기반으로 이것을 계속 하고 싶은지, 아니면 더 나은, 더 이상의 어떤 것으로 나아갈지 결정하고, 그것을 위한 디딤돌로 활용할 지의 문제인 것입니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능력은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능력과 더불어 건강한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긍정적인 마음자세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반드시 나쁜 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점이 함께 공존한다고 여기는 자세이기도 하죠.
세상을 변화시킨 마리아 몬테소리의 교육 철학에서 역시 실수에 대해 세상과는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위키피디아 설립자 지미 웨일스, 야후 CEO였던 마리사 메이어 등 인공지능 시대를 이끌고 있는 실리콘밸리 1%를 비롯하여 전 세계 영향력 있는 수많은 이들이 몬테소리 교육을 접했었고, 그 가치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몬테소리 여사의 교육철학과 관련해 실수를 다루는 법에 대해서는 일부 이전 다른 게시글에서도 다루었었죠.
☞ 분별력 끌어올리기 게시글 하단, 실험을 통해 배우기 부분 참조
우리는 지원자들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스트레스와 삶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을 다른 게시글로 올려 드린 바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크건 작건 간에, 삶의 불확실성 앞에 놓인 좌절과 아픔, 즉 일상의 트라우마를 겪게 됩니다.
위 게시글이 일상의 트라우마와 관계 맺는 방식을 배움으로써, 누군가에게는 마음에 본래 내재되어 있는 변화의 의학(transformative medicine)을 발견해 나가도록 도울 거라 생각합니다.
신청서에 강점에 관하여, '상처나 트라우마, 예민함'이 기재되어 있는 것을 보고 혹시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상처나 트라우마, 예민함 또한 최대 강점으로 승화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은연중에 가지고 있던 편견들을 내려놓고 좀 더 열린 관점으로 그것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예민함은 '다른 사람들이 놓친 작은 것까지 볼 수 있는 남다른 감각이자 뛰어난 삶의 재능'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결점이나 숨겨야 하는 대상으로만 여기고 괴로워 하던 것에서, 이제 '본연의 섬세하고 신중한 감각'을 되찾겠다고 방향을 틀게 되고, 그것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더 넓은 세상, 더 풍요로운 내면을 경험하는 가능성을 넓힙니다.(나중에 기회가 되면, 예민함이라는 기질을 장점으로서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좀 다뤄볼까 합니다.)
충분히 아파봤던 이들 중 많은 이들은 다른 사람을 수용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커지는 것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역경의 고통은 누군가에겐 교만을 다스리는 약이 되기도 하고, 삶의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인지시켜주며, 더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원동력이 되죠. 자신보다 덜 행복한 사람을 더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요.
어떤 이에게 그것은 성장의 발판으로서, 삶의 다른 차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기도 합니다.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을 통해 자신의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만듦으로써, 성공과 커다란 진전을 이루어 낸 이들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진정 '약점'이 아니라, '인간의 숨은 잠재 능력이 싹트는 혁신과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대가 그 어떤 인생의 치명타를 입었다 해도, 그대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 글을 정리하며 그대에게 다시 묻습니다.
'그대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이며, 그것으로 그대는 앞으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